윌로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 Hulot (1953) * * * *

감독
자크 타티 Jacques Tati

주연
자크 타티....윌로씨
Jacques Tati....Mr. Hulot
나탈리 파스코....마르틴느
Nathalie Pascaud....Martine
루이 페로....프레드
Louis Perrault....Fred
미셸 롤라....아줌마
Michèle Rolla....The Aunt
앙드레 뒤브와....사령관
André Dubois....Commandant
수지 윌리....사령관의 부인
Suzy Willy....Commandant's Wife
발렌타인 카맥스....영국인 여자
Valentine Camax....Englishwoman
루시앵 프레지스....호텔 경영인
Lucien Frégis....Hotel Proprietor
레이몽 칼....웨이터
Raymond Carl....Waiter

윌로씨의 공격
바캉스는 제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인의 습성 중 하나입니다. 덥디 더운 계절에 불편한 외지로 떠나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가지를 엄청 뒤집어 쓰고 고생만 죽어라 한 뒤 돌아와서는 그걸 '휴식'이라고 하다니요. 고생은 평일날에도 직장에서 충분히 하지 않습니까? 왜 휴가 때도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요?

그러나 논리만으로는 부조리한 습관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여름만 되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땡볕 아래로 나가 땀을 질질 흘리고 돌아옵니다. 간신히 어른이 되어 그 부조리함을 깨달으면 이번엔 애들이 가만 있지 않죠. 참으로 끔찍한 악순환이에요. 그리고 여름 휴가가 전국민적인 거룩한 행사인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런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겁니다.

[윌로씨의 휴가]는 그런 부조리한 공간에서 일어납니다. 노르망디의 작은 여름 휴양지가 배경이지요. 위에 제가 장황하게 언급한 것처럼 끔찍하게 북적이는 곳은 아니지만 (53년만 해도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 바캉스를 그렇게까지 신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럴 여유도 없었고요.) 그렇게 재미있는 곳도 아닙니다. 몇몇 사람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습관적으로 같은 호텔에 모여 앉아 있는 것이죠. 그들은 가끔 테니스도 하고 카드 게임도 하며 말도 타지만 그 역시 슬슬 지루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컹거리는 성냥갑처럼 생긴 고물차를 타고 한 이방인이 나타납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관절염에 걸린 학처럼 뻣뻣하게 걸어다니는 이 키 큰 중년 남자는 호텔에 들어오자 마자 이 조용한 무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닙니다. 정말 들어오면서 호텔 문을 안 닫아서 요란한 바람이 호텔 안으로 밀어닥치거든요.

무슈 윌로는 결코 과격한 남자도 아니고 파괴적인 남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과묵하고 살짝 수줍으며 예절바른 구식 남자지요. 그는 구식 신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들이 오면 정중하게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 그들 앞에 짐이 놓여 있으면 자청해서 짐꾼이 되어 줍니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휴양지에서 며칠 동안 즐거운 휴가를 보내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일단 들어서면 모든 일들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왜냐고요? 글쎄요. 그는 일단 서툰 남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대충 세상의 흐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그 리듬을 따르는 방법을 알죠. 하지만 무슈 윌로는 그 리듬을 따르지 못합니다.

이것이 전부라면 무슈 윌로의 모험담은 요란한 좌충우돌로 끝났을 겁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슈 윌로와 세상의 대결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무슈 윌로는 어떤 종류의 리듬도 못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세상과 무슈 윌로는 마치 미묘한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섬세한 댄스를 춥니다.

대표적인 예가 그 유명한 타르 통 장면입니다. 무슈 윌로가 카누에 타르 칠을 하려 할 때 물에 반쯤 떠 있는 타르 통은 절묘한 리듬을 타며 뒤로 밀려 갔다가 앞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뒤로 밀려가서는 옆으로 돌아옵니다. 이 타르 통의 움직임은 무슈 윌로의 동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그를 약올립니다. 세상은 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그 결과 [윌로씨의 휴가]는 고전적인 슬랩스틱 무성 영화 풍의 영화적 개그로 가득 찬 작품이 되었습니다. 네, 이 영화는 거의 무성 영화입니다. 대사들은 아주 적고, 나오는 대사 절반은 [찰리 브라운] 만화의 어른들 대사처럼 알아듣기 힘든 웅얼거림입니다. 무슈 윌로 자신도 거의 대사를 하지 않습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무슈 윌로의 모험담은 지나치게 느리고 덜 자극적이며 한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로저 이버트도 그런 관객들을 걱정했는지,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면서 끝도 없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웃지 않았다. 하지만...'의 토를 달아댔지요. 영화가 낡았다는 증거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과 같은 이전의 무성 영화에 비해서도 무슈 윌로의 모험담은 느린 편입니다. 프랑스라는 국적 역시 그 느림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프랑스 코미디들은 빠른 편입니다. 빠른만큼 실속이 없어서 느리게 보이는 것일뿐이지요.

무슈 윌로의 모험담이 느린 건 그게 바로 이 영화를 감독하고 주연한 자크 타티와 무슈 윌로의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터넷 평론가는 이 영화를 3배속으로 틀어도 잃는 게 거의 없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무슈 윌로의 휴가]의 속도를 높이면 영화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고 맙니다. 중심 줄거리 없이 일련의 조용한 해프닝으로만 이루어진 영화 내용은 속도가 빨라지면 오히려 더 지루해지며 의미도 축소됩니다. 무슈 윌로가 벌이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그만큼이나 슬랩스틱의 부재 역시 중요합니다. 영화는 사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장소, 사건들에 같은 비중을 두고 느긋하게 전개됩니다. 무슈 윌로의 모험담이 빛을 발하는 이유도 그런 무표정한 평등성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보기만큼 프랑스적이지도 않습니다.

슬랩스틱의 양은 적어도 종종 등장하는 해프닝은 아름답게 안무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비평가들이 자크 타티를 사랑하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는 아름다운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주는 마임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그런 해프닝을 절묘한 미장센느 안에 밀어넣는 영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테리 존스가 크라이테리언 DVD 소개에서 말했듯, [윌로씨의 휴가]는 재미있는만큼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은 [나의 삼촌]이나 [플레이타임]과 같은 자크 타티의 후기 야심작과 비교해, [윌로씨의 휴가]를 살짝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타티 특유의 현대 문명 비판은 그런 후기작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그에 비하면 [윌로씨의 휴가]의 무게는 약합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처럼 가볍고 우아하게만 보이죠.

그러나 언제나 제가 말한 것처럼 이런 가벼운 아름다움은 결코 보기만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타티의 거장다움에 경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플레이타임]을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가적인 진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윌로씨의 휴가]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01/05/14)

DJUNA


기타등등

무슈 윌로가 타고 다니는 차는 1924년형 Amilcar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엔 꽤 흔한 차였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