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임아론

빼꼼

[빼꼼]은 EBS와 투니버스에서 방영중인 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빼꼼은 다소 순진멍청한 북극곰으로 아무런 대사 없이 스키를 타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거나 쥐를 잡으며 주어진 3분을 채웁니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죠.

[빼꼼]은 3세에서 8세 사이의 유아 시청자들을 위한 작품이고 [빼꼼의 머그잔 여행] 역시 같은 나이 또래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저에겐 이 작품이 조금 자극적이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조금은 힘겨워하는 것 같더군요. 물론 열심히 잘 보는 아이들도 있었겠지만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빼꼼이 아닙니다. 베베라는,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죠. 크리스마스 며칠 전, 베베는 산타 클로스로부터 마법의 펜던트를 받는데, 이 펜던트를 돌리면 다소 정신없는 설치류가 조종하는 마법의 머그잔이 나타납니다. 엉겁결에 머그잔에 올라탄 베베는 북극일 수도 있고 남극일 수도 있는 극지방에 떨어지는데, 거기서 북극곰 빼꼼은 남자 펭귄 꽁꽁과 함께 여자 펭귄 도도를 가운데 두고 삼각관계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죠. 이들은 다시 실수로 베베와 함께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거기서 그들은 목숨을 건 모험을 벌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이 이야기를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나레이터가 아무리 빼꼼의 이야기를 어리고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순진무구한 이야기로 치장하려 해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걸요. 특히 주인공이어야 마땅한 빼꼼은 살짝 도가 지나쳤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거의 스토커에 가깝습니다. 도도에 대한 빼꼼의 사랑은 거의 비정상적인 집착 수준이고 그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이들 동물들이 극지와 사막에서 벌이는 갈등도 굉장히 날이 서 있어요. 이런 동물들이 역경을 거치면서 친구가 된다는 게 내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날이 서 있는 건 바뀌지 않죠.

영화에서 벌어지는 액션도 상당히 아슬아슬한 편입니다. 물론 같은 수준의 위험이 근육질의 백인 아저씨들 위에 떨어진다면 사정은 다를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괴물과 맞서고 절벽에서 추락하고 집에 영영 돌아가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 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입니다. 엄마들에게도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편하게 감상되지 못할 텐데, 이 영화는 집에서 아기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정 사고의 절반 정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죠.

영화의 페이스도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나레이터를 동원한다고 해도 대사 없는 동물들만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의 러닝타임을 채우는 건 힘든 일이죠. 빼꼼에게 76분은 지나치게 깁니다. 이 캐릭터는 3분이 딱 좋습니다. 사실 2분 정도가 이상적이죠. (07/03/05)

DJUNA

기타등등

제목엔 머그잔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베베와 동물들이 타고 다니는 잔은 머그잔이 아니죠. 원통형도 아니고 얕거든요. 그냥 찻잔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