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린 쳉셍
Lin Cheng-sheng

주연
르네 리우....첸 메이리
Rene Liu....Chen Mei-li
징 쳉....린 메이리
Jing Tseng....Lin Mei-li

1.

메이리와 메이리

린 메이리는 타이페이 교외의 산동네에 사는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녀는 혼자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자 그 짝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합니다. 원래 별로 좋은 학생도 아니었으니 학교에 미련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한동안 아빠가 일하는 공사판 일을 돕던 메이리는 쇼핑 센터에 있는 극장의 매표원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메이리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첸 메이리라는 동갑내기를 만납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이 잘 맞는 그들은 매표소의 좁다란 공간 안에서 연애담이나 성적 공상, 그들 자신의 육체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우정은 린 메이리가 짝사랑했던 선배가 여자 친구를 데리고 극장을 찾아오면서 엉뚱한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2.

린 쳉셍의 [젊은 날의 웅얼거림]은... 네, 우리가 대만 뉴웨이브 영화한테서 기대하는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조용하고 느리며 숨이 막힐 정도로 일상 속에 갇혀 있습니다. 특히 두 메이리의 대책없고 지루한 삶을 번갈아 보여줄 때는 그렇습니다. 관객들은 원래 대만 아트 하우스 영화들은 다 그러려니 하고 이런 담담한 분위기를 참고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갑갑하다고 느끼는 건 두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세대들이 죽어라 고생하며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와 기회를 제공해주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정말 어떤 길이 열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어딘가가 불만이지만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린은 끊임없는 짝사랑과 로맨틱한 공상 속으로 몰입하고, 첸은 종종 터뜨리는 감정 폭발과 장난으로 이 어정쩡한 느낌을 해소하려 합니다.

영화가 반쯤 지나고 우리의 두 주인공이 만나면, 이 갑갑한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영화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진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들이 일하는 매표소의 공간은 갑갑하기 그지 없지만 그들은 최초로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해방감과 정서적 만족은 자기네들도 모르게 서서히 성적인 관계로 옮겨갑니다.

실연의 상처로 흐느끼는 친구를 위로하다가 점점 에로틱한 방향으로 틀어지는 장면 같은 것은 이런 장르에서는 정말 뻔하디 뻔한 클리셰죠.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못하는 소리가 없는 듯 했던 두 사람이 갑자기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는 부분도 갑작스러울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정작 그 장면은 진부하지도 않고 갑작스럽지도 않습니다. 두 메이리의 섬세한 감정이 그만큼이나 잘 표현되었고 그들의 순진무구한 반응은 정말로 귀엽기까지 하거든요. 마침내 둑이 트인 듯 쏟아지던 둘 사이의 감정 교류를 생각해보면 그들 사이의 성적 갈망 역시 당연한 듯 하고요. 둘의 섹스 장면도 튄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조용하게 끌어왔던 감정의 흐름을 완성시킨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그 담담하고 현대적인 외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로맨틱해집니다. 이 로맨티시즘은 중간중간에 추가된 린 메이리의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강화됩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린 메이리의 이야기와 함께 1세기에 걸친 대만 여성들의 긴 역사를 완성시켜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래 전에 죽은 할아버지와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면서 린 메이리의 이야기를 보다 로맨틱하게 꾸며주는 것일 수도 있죠. 할아버지의 영혼을 기다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할머니와 손녀에게 첸 메이리가 다가가는 마지막 장면은 고전적인 로맨스의 완성으로까지 보입니다.

3.

[젊은 날의 중얼거림]은 큰 야심은 없는 영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된 듯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대만의 예술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듯 했습니다. (00/09/06)

DJUNA

기타등등

제2회 퀴어 영화제 상영작입니다. 사운드가 나쁘더군요. 특히 초반에는요. 지나치게 일찍 시작해서 나중에 들어오는 관객들 때문에 앞부분의 감상 조건이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