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성수

주연
안성기....진립
주진모....최정
정우성....여솔
장쯔이....부용공주
박정학....가남
박용우....주명
이두일....지산
유해진....도충
정석용....하일
한영목....단생
위롱광....람불화

(뒤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솔과 부용 공주

파프리카 [무사]의 시대 배경은 원명 교체기인 1375년입니다. 주인공들은 고려에서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간첩 누명을 뒤집어쓴 사신 일행들이고요. 그들을 귀양지로 끌고가던 명군이 원군에게 몰살당하자, 이들의 리더인 최정 장군은 고려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도중에 명나라의 부용공주를 납치한 원나라 병사를 만나자 잽싸게 계획은 수정됩니다. 부용공주를 구출해 명분도 세우고 고려로 돌아갈 배도 얻겠다는 거죠. 그들은 부용공주를 구출하는데 성공하지만 이건 고생문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듀나 중국 대륙에 버려진 고려 무사들과 김성수의 결합은 언뜻 보기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김성수의 영화들은 모두 현대 도시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스타일도 그 소재에 맞추어져 있었지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사극이라는 장르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비트]나 [태양은 없다]와 같은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겉멋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감정은 사극이라는 장르에 더 잘 맞습니다. 이 장르의 주인공들은 원래 조금씩 거창한 법이니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격해지고 행동이 극적이어도 특별히 이상할 것 없습니다. 여전히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의식한 폼을 잡아대지만 그래도 '폼만' 잡아대는 일은 없죠. 온갖 잔인무도한 무기로 사람들을 죽이는 게 먼저고 폼은 다음이니까요. 대도시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삐까뻔쩍한 스타일을 남발했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왕가위 모방처럼 보였지만 사극에서는 사정이 달라지는군요.

파프리카 [동사서독] 모방 같지 않고요?

듀나 아, 그런 느낌은 별로 안들죠. 장르가 다르잖아요. [무사]는 무협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특정 시대를 무대로 한 비교적 사실적인 액션물이죠. 게다가 주인공들의 내면에 치중하고 스토리는 거의 무시해버린 [동사서독]과는 달리 [무사]에는 분명하고 굵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덕택에 김성수의 스타일은 스토리 속에 적정 수준으로 녹아들었어요.

파프리카 하긴 이 영화의 액션신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실적이고 잔혹합니다. 김성수는 여전히 화면발을 세우면서 이 장면들을 거창하게 치장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날아가는 잔인함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듀나 내용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크게 다를 건 없죠. 이 영화의 부용 공주는 트로이의 헬렌이고, 조씨 고아이고, 라이언 일병입니다. 이를 갈면서라도 구출하고 지켜야 할만큼 귀중하지만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파프리카 그러고보니 줄거리가 어딘지 모르게 [오디세이]를 연상시키지 않나요?

듀나 전 [역마차]나 [용서받지 못한 자]와 같은 서부극이 더 연상되던 걸요? 하긴 인기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합니다. 그만큼 내용이 보편적이라는 증거일 겁니다. 옛 이야기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친근한 줄거리잖아요? 신분 높은 여자를 사랑하는 천한 계급의 남자의 이야기에서부터 고향에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긴 오디세이까지 모두 말이에요.

전체적으로 괜찮은 각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강렬하고, 억지로 꾸미지 않고도 충분한 진짜 감정들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데도 인물 성격 역시 분명하게 각인되고요. 귀족 출신의 젊은 장군에서부터 유림, 불교 승려, 하층 계급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이 속해 있는 계층도 다양해서 상당한 사회적인 깊이까지도 느껴집니다.

파프리카 전 대사가 불만이었어요. 어차피 우리가 고려 시대의 언어를 그대로 끌어다 쓸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너무 현대적이더군요. '해요'나 '했죠'로 끝나는 말들이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고, 종종 배우들은 시대 자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약간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했다면 더 믿음직스러웠을 거예요. 적어도 최정이나 이지헌과 같은 귀족들에게 조금 신경 쓴 대사를 주었다면 계급 갈등의 묘사도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요.

계급 갈등도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원군의 첫번째 공격 이후 한족 피난민들이 부용 공주에게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하는 장면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황족에 대한 존경심을 그렇게 쉽게 거두지 않았을 거예요. 특히 한족과 몽고족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던 그 시기에는 공주의 상징적 위치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그 사람들이 직접 한 선택인 걸요. 누가 따라오라고 했나요?

듀나 하긴 그 상황이 섬세하게 표현되었다면 부용 공주의 캐릭터도 조금 더 입체적이 되었겠죠. 부용 공주는 지금까지 장쯔이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얇습니다. 하긴 김성수는 여성 캐릭터 묘사에 그렇게 능한 각본가가 아닙니다.

파프리카 그래도 장쯔이는 여전히 예쁘게 나오더라고요. 조금 말 안듣는 어린 소녀와 같은 당돌함과 황족다운 위엄이 적당히 섞여 있는 모습도 캐릭터에 맞고요. 그런데 세수할 물도 구하기 힘든 그 긴 여정에서 어떻게 화장 하나 안 지워지는지...

듀나 정우성은 언제나처럼 연기보다는 똥폼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니까 똥폼도 상당히 늘었네요.

파프리카 정우성과 장쯔이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선 자꾸 2프로 텔레비전 광고가 연상되던 걸요! 그 과장된 감정하며...

진립

듀나 애당초부터 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찍었던 광고니 어쩔 수 없죠.

가장 괜찮았던 배우는 진립 역의 안성기였습니다. 역시 경력은 붙고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튀려고 하지 않는 신중한 캐릭터인데도 조용한 카리스마와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파프리카 최정 장군을 연기한 주진모는 아직 거칩니다. 발성 연기 문제도 조금 있고요.

듀나 뒤로 갈수록 나아지던 걸요.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이 경험 부족한 젊은 무관이라는 역에 어울리는 것인지도 몰라요.

파프리카 종종 관객들은 주진모가 폼을 잡을 때 웃어댔지요. 예를 들어 "공주를 구하자!"와 같은 장면들은...

듀나 그건 배우의 연기나 연출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설정이 지나치게 익숙하고 도식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최정의 선택이 너무 과격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여간 억지는 아니지 않아요? 최정 같은 사람이라면 정말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같으면 절대로 밑에서 참고 지낼 수 없는 사람이지만요.

볼거리가 많은 영화죠?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드물게 보는 2.35:1의 넓은 화면 위에 펼쳐지는 스펙타클은 '대작'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파프리카 중국 대륙의 온갖 모습을 다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느낌도 들던걸요? 배경에 맞추어 다양한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듀나 다양한 볼거리를 주었다고 해서 그걸 비난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네요. 그렇게 작위적인 설정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오디세이'인 걸요.

파프리카 몇 안 되는 고려 병사들이 그 수많은 원군을 무찌른 건 작위적이 아닌가요?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된 거예요? 원군 병사들이 다 죽은 건가요, 아니면 장수가 죽자 후퇴한 건가요? 부용 공주는 또 앞으로 어떻게 되고? 전체적으로 설명이 부족해요. 이런 부분이 한 두 군데도 아니고요.

듀나 4시간이 넘는 원래 필름에서 잘라 2시간 38분 짜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긴 3시간 30분짜리 감독판도 나온다니 그걸 보면 더 설명이 될지도 모르죠.

파프리카 이 영화가 맘에 드나 보죠?

듀나 그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무사]는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드라마와 액션은 강렬하고 흥미로운 로맨스와 역사가 있습니다. 볼거리도 풍성하고 스케일도 커서 진짜 대작이라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안겨주기도 하고요. 김성수는 [무사]를 치기없는 진지한 대작 상업 영화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독창적인 성과는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굉장한 것이지요. (01/08/21)

D&P

기타등등

당시 고려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했을까요?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중국어를 요새 사람들이 영어하듯 썼을 것 같지는 않군요. 말이 안 통해 필담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