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왕가위 Kar Wai Wong

주연
노라 존스....엘리자베스
Norah Jones....Elizabeth
주드 로....제레미
Jude Law....Jeremy
데이빗 스트래세인....아니
David Strathairn....Arnie
나탈리 포트먼....레슬리
Natalie Portman....Leslie
레이첼 바이스....수 린
Rachel Weisz....Sue Lynne
프랭키 파이슨....트래비스
Fankie Faison....Travis
챈 마샬....카챠
Chan Marshall....Katya

제레미와 엘리자베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라는 젊은 여자입니다. 이 사람은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한 뒤로 뉴욕을 떠나 미국 전역을 떠도는데, 그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뉴욕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영국인 청년 제레미, 별거 중인 아내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멤피스의 경찰관 아니와 그의 아내 수 린, 네바다의 포커 도박사인 레슬리.

전형적인 왕가위 영화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그의 영화에서 봤던 것들이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들(블루베리 파이, 열쇠, 금주모임에서 주는 칩, 술집 영수증...)은 무언가의 상징이고, 고독한 주인공은 사랑과 기억에 대한 독백을 끝없이 웅얼거리고, 음악은 재활용되며, 스텝프린팅은 십 분에 한 번씩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에도 왕가위가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그 공허함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건 왕가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 영화를 조금 다른 통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겠죠. 바로 언어 말입니다. 어느 정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대사가 전달되자 왕가위 풍의 낯 간지러운 대사들이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 그냥 보이는 겁니다.

이전 영화와 차별화되는 건 미대륙이라는 공간적 배경입니다. 여기서도 왕가위는 비교적 쉬운 수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실제 나라와 자신을 충돌시키는 대신 빔 벤더스 풍의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그 자체는 이상할 게 없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지배 이후, 미국 영화가 그리는 미대륙은 보편적인 신화의 무대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왕가위의 이 영화에는 빔 벤더스의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구체적인 고민과 애증의 감정은 없습니다. 빔 벤더스가 개인적 관찰과 예술적 고민을 통해 자신의 미국을 만들었다면 왕가위는 그냥 빔 벤더스에게서 그의 미국을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해요. 음악을 담당한 라이 쿠더와 함께요.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배우들인 것 같습니다. 서양배우들이 왕가위 대사들을 읊는 건 괴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 번 정도 볼만은 합니다. 그리고 다리우스 콘지의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모두 아름다워보여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죠. (08/02/26)

DJUNA

기타등등

왕가위는 이 영화의 영어 각본을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로렌스 블록과 같이 썼더군요. 어쩌다가 그를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도는 짐작할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