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윤기

주연
전도연....희수
하정우....병운

병운과 희수

이윤기가 [아주 특별한 손님]에 이어 다이라 아즈코의 또다른 단편을 영화화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이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긴 어울려보이기도 해요. 목소리 높이지 않고 현실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괴상한 구석이 있는 담담한 이야기들이죠.

[멋진 하루]는 빚 받으러 다니는 여자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희수는 1년 전 자기에게 350만원을 꾸고 까맣게 잊어버린 옛 남자친구 병운에게 돈을 받으러 갑니다. 하지만 지금 땡전 한 푼 없는 병운에겐 희수에게 줄 돈이 없죠. 어쩔 수 없이 희수는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꾸러다니는 병운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병운의 삶에 휘말릴 수밖에 없지요.

다이라 아즈코의 세계는 [아주 특별한 손님]보다 [멋진 하루]에서 보다 자연스럽게 한국화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골보다는 도시가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멋진 하루]의 설정이 조금 덜 인위적이어서 보다 자연스러운 각본을 쓰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고요. 이 영화의 대사는 괜찮습니다. 이윤기가 종종 걸려 넘어졌던 어색한 문어체 문장들도 거의 없지요.

영화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캐릭터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특히 남자주인공 병운에게요. 병운은 한마디로 굉장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악의없는 잠재적 범죄자 타입이죠. 그는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쉽게 사람들을 유혹하며 죄의식과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추격자]의 지영민이나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처럼 무시무시한 폭력성향을 드러낼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애어른이어서 그렇지,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위험도는 가장 높죠. 저런 남자들에게 얽혀서 뒷감당 못하고 고생할 가능성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보다 훨씬 높잖아요. 소설에서는 화자였던 여자주인공 희수는 여자들이 그런 남자를 만나면 어떤 고생을 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실습교관이라 하겠습니다.

영화는 지금까지 나온 이윤기의 영화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밝습니다. 여전히 주인공들의 인생은 꿀꿀하지만 이들이 함께 만나 모험을 나누는 '멋진 하루'엔 그 꿀꿀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나온다고 해도 대책없이 밝기만 한 병운이 그 분위기를 짓밟아버리죠. 그렇다고 이 작품이 아주 밝은 영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영화는 가라앉아있고 종종 심심하며 느려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유머도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해 가끔 튀고요. 그냥 이윤기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인데, 그래도 그 정도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이윤기와 다이라 아즈코의 개성에 익숙하다면 말이죠.

배우들은 좋습니다. 특히 주연배우 전도연과 하정우는요. 하정우는 [비스티 보이즈]의 연기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캐릭터로 이어지는 느낌인데, 앞의 두 영화에서 보여준 그의 무책임한 젊은 남자의 분위기가 캐릭터 구축에 적절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전도연은 '칸 여우주연상 배우'의 에고 같은 건 전혀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콤비 플레이에 집중하는 편인데, 그 결과는 모범적입니다. (08/09/17)

DJUNA

기타등등

[아주 특별한 손님]의 주연배우 한효주가 카메오 출연합니다. 버스정류장 장면에 잠시 나오고 전화 목소리 출연도 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