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신동일

주연
박희순....재문
장현성....예준
홍소희....지숙

예준, 재문, 지숙

(1)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지 않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전 이 영화가 쓰리섬을 다룬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계산착오도 그런 계산착오가 없었어요. 이 영화는 굉장히 단도직입적인 가톨릭 영화입니다. 신이나 성경이 등장하지 않는 가톨릭 영화죠.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가장 전형적인 가톨릭 주제, 바로 죄와 죄의식입니다.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이들은 끊임없이 전이되고 속죄되고 부패되고 심판받습니다. 어떻게든 주인공들이 빠져나가려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선악과의 부작용인 거죠.

(2) 영화의 주인공들은 세 명입니다. 예준과 재문은 군대 친구이고 지숙은 재문의 아내입니다. 한동안 운동권 학생이었던 예준은 지금 잘 나가는 외환 딜러입니다. 재문은 작은 레스토랑의 요리사이고 지숙은 미용사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들의 직업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일에 열심이고 드라마 역시 이들의 직업을 통해 전개됩니다.

(3) 예준과 재문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럭저럭 잘 얽혀 있습니다. 예준에게 재문은 왕년 운동권 좌파의 죄의식을 약화시켜주는 도구입니다. 재문과 지숙이 그에게 없는 가족의 따스함을 안겨주기도 하고요. 재문과 지숙에게도 예준은 편리한 친구입니다. 일단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니까요. 이렇게 보면 좀 냉소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이들은 꽤 친한 사이이고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끔찍한 사고 하나가 이들을 갈라놓기 전까지는 말이죠.

(4) 이들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가톨릭 죄의식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죄의식에 절은 한국 좌파 지식인 남성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예준은 감독의 전작 [방문자]의 주인공 호준처럼 그들의 실수와 단점을 최대한으로 확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방문자]에서 호준은 그나마 계상을 만나 상승할 기회를 얻지만, 예준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내리막길뿐입니다. 이를 극복하기엔 그의 위선과 비겁함이 너무 크고 그는 자신의 계급적 우위를 너무나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지요. 그렇다고 그의 우위를 인정하고 경제적 도움을 받아들이는 재문과 지숙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예준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가 있지요.

(5) [방문자]와 마찬가지로 배우 의존도가 큰 영화입니다. 가장 연기할 거리가 많은 배우는 예준 역의 장현성이죠. 영화 속의 모든 테마들이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부글거리니까요. 박희순의 재문은 그에 비해 다소 모호한데, 기능상 그가 가장 종교적인 대속자의 입장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 사이에 홍소희가 연기한 지숙이 끼어드는 건데, 두 노련한 베테랑에게 테크닉 면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위치지만 그래도 묘하게 재미있습니다. 선배들의 안정된 연기와 비교되는 살짝 위태로운 혼란함이 느껴지는데 그게 두 남자들 사이에 낀 지숙이라는 캐릭터의 입장과 잘 맞아 떨어지는거죠. (08/11/13)

DJUNA

기타등등

올해의 책장상을 받아도 될 영화입니다. 후반부에 얼핏 예준의 책장이 보이는데, 8,9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고 그 뒤 생업에 종사하느라 책 읽기를 그만 둔 3,40대 좌파 남자의 책장에 있을 법한 책들만 들어있더군요. 책이란 이렇게 꽂아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