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노동석

주연
김병석....병석
유재경....재경

병석과 재경

만약 여러분이 젊고 가난한 영화학도에게 카메라와 돈을 던져주고 영화 하나를 찍으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그 젊은이는 권태와 무기력의 함정 속에 빠져 있는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의 지루한 삶을 다룬 정적인 영화를 찍어올 것입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초기작은 예술가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아빠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아닌 이상 그 젊은이가 누리는 삶의 조건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50만에 육박하는 이 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는 현실주의자가 과연 영화판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그 결과 인디 영화들은 권태와 무능력과 불안함으로 물든 젊은이들로 가득 차고 그건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게 됩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그 중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목만 봐서는 'My'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부모들의 세대'나 '조부모의 세대'와 차별성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삶의 동시대적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죠. 전자도 먹힐 수 있겠지만 후자 쪽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는 자기 세대만의 우월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의 젊은이들입니다. 결혼식 비디오와 갈비집 숯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병석과 역시 사는 게 특별히 병석보다 나을 게 없는 병석의 여자친구 재경이죠. 병석은 그래도 영화감독의 꿈이라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 꿈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그 근처까지 가는 것도 어렵죠. 그러기엔 그들을 억누르는 경제적인 압박감이 너무나도 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둘을 억누르는 일련의 경제적 재난과 그에 대한 소극적 대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형의 빚, 실직, 홈쇼핑 사기가 주인공들을 억누르면 그들은 카드깡을 하거나 자기 물건을 팔아 엉성하게 막는 식이죠. 보면 참 암담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면 그들의 면전에 대고 "그러게 헛된 꿈이나 꾸지 말고 앞날을 준비하라고 했잖아!"라고 고함치고 싶어질 겁니다. 아마 그건 맞는 말일 겁니다. 병석이 영화감독의 꿈이나 예술가적 자의식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보다 현실적인 생활수단을 찾았다면 둘의 삶이 이처럼 초라하지는 않았겠죠. 여전히 힘겨웠겠지만 영화 속에서만큼 꽉 막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욕망과 소비의 방정식은 생각만큼 풀기 쉬운 게 아닙니다. 아니,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풀기 힘든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죠. 영화는 별다른 가치 평가 없이 우리의 주인공들이 이 까다로운 함정의 바닥을 칠 때까지 말없이 따라갑니다. 영화는 그나마 병석에게 예술가의 희망과 꿈을 컬러 이미지로 제공해주던 카메라가 그 존재의미를 잃고 꺼져버릴 때 끝납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3500만원의 극저예산과 대여섯 명의 스텝들이 주말에만 나와 찍은 극저예산 디지털 흑백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터무니없이 빈약한 물질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주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너무 능숙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떨어질 지경이죠. 디지털 화면은 거칠고 음질은 나쁘지만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에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투영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연출부일까지 함께 맡아 한 아마추어 배우들도 캐릭터들에 완벽하게 녹아든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보다 보면 걱정될 정도예요("어쩌면 좋아, 쟤들 정말 저렇게 사나봐!"). 어떻게 보면 [마이 제너레이션]은 암담하고 초라한 내용과는 반대로 감독이 속한 세대의 영화적 테크닉을 남몰래 과시하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어요. (04/11/18)

DJUNA

기타등등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재경이 당한 홈쇼핑 사기가 남 이야기처럼 안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