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한

주연
최강희....주원
감우성....세진
이연희....소현
정일우....지우
임정은....수정
류승룡....정석
엄태웅....진만

주원과 세진

전 이한의 영화들에 꽤 관대한 편이죠. 설정만 보면 유치찬란 멜로드라마인 [연애소설]도 좋게 봤고, 권상우가 벙거지 가발을 쓰고 어릿광대짓을 하는 [청춘만화]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관대해요. 전 그의 어이없는 순진무구함과 구닥다리 순정만화 감성을 모두 받아줄 수 있었어요. 아니, 있었다고 생각했죠. 앞의 두 영화와 함께 3부작을 구성한다는 [내 사랑]을 보기 전까지는.

[내 사랑]은 시작부터 수상쩍은 기획이에요. 소위 [러브 액츄얼리] 식 앙상블 영화인데, 이미 그건 몇 년 전에 [새드 무비]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시도된 적 있죠. 남의 영화 설정을 빌려왔는데, 그 빌려오는 것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한 거란 말이에요. 시작도 하기 전에 신선함이 날아가버렸어요.

영화가 하는 이야기는? 영화는 3.5커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3년 전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는 지하철 기관사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학교 선배를 짝사랑하는 대학생 이야기이며, 세 번째는 홀아비 직장 선배를 짝사랑하는 광고쟁이 이야기죠. 0.5는 뭐냐고요? 6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리허그질을 하던 총각이 하나 나옵니다. 그에게도 연애와 관련된 사연이 있고요. 하여간 이들의 이야기는 며칠 뒤에 벌어지는 개기일식날에 대충 정리가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별 재미가 없습니다. 대충 남자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앉아있고 여자들이 온갖 애교를 떠는 장면들을 상상하시면 돼요. 임정은이 연기한 뻣뻣한 광고쟁이 수정은 아닐 것 같지만, 안경 쓴 커리어 우먼 차림으로 투덜거리는 모습이 저에겐 그냥 애교처럼 보이더군요. 여자들은 그래도 애교라도 떨지만 남자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안 합니다. 그나마 짝이 없는 프리허그맨 엄태웅이 조금 바쁘게 움직일 뿐이지.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균형이 깨져 있습니다. 제가 [연애소설]의 촌스럽고 과장된 순진무구함을 견뎌냈던 이유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차태현의 지환의 눈을 통해 그의 연애담을 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사랑]의 캐릭터들에겐 그런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요. 그나마 이연희가 연기하는 대학생 캐릭터 소현이 귀여워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스토리나 캐릭터보다는 이연희라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지요.

일단 장점들이 사라지자 이한의 단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옵니다. 대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촌스러워 보이고 스토리는 너무 인공적이라 방부제로 반죽한 인스턴트 상품 같아요. 감상주의는 그냥 지나치고요. 대표적인 장면이 막판에 나오는 세진의 지하철 2호선 예찬가죠. 감우성은 그 대사를 어떻게 견뎌냈나 몰라요.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소위 '지하철 발기' 에피소드입니다. 아무리 캐릭터의 나이를 낮추었다고 해도 서른이 넘은 배우들이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 가이드 주인공들보다도 어리게 행동하는 걸 보는 건 그냥 민망해요. 이럴 때는 위장된 순진무구함이 섹스신보다 더 음탕하게 느껴지지요. (07/12/11)

DJUNA

기타등등

원래는 아역배우 서신애가 주인공인 스토리 라인이 하나 있었죠. 그걸 가장 기대하고 극장에 갔는데 통편집되었더군요.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긴 해요. 하지만 홍보사진까지 다 찍은 뒤에 잘려나가는 건 끔찍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