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명세

주연
최진실....미영
박중훈....영민
김보연....최승희
전무송....편집장
송영창....임과장
김영배....미스터 서
도용구....미스터 박
윤문식....미스터 구
조주미....주인집
권병길....약사
최종원....의사

1.

벌써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도 십 년 전 영화가 되었군요. 세월 참 빨라요. 그렇죠?

그리고 그러는 동안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있자니 정말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으며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었던 그 먼 옛날 말입니다. (당시 작가들은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썼답니다. 믿어지세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당시보다는 지금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영화를 더 잘 감상할 수 있겠어요. 이 영화의 회상조 느낌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당시보다는 요새 더 잘 먹히거든요. 게다가 영민은 30대를 넘긴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으니 그 때가 바로 이 무렵일 겁니다.

2.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풋나기 작가인 영민과 그의 아내 미영의 신혼생활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청혼하고, 신혼 여행을 가고, 신혼 기분이 사라지자 슬슬 따분해지기 시작하고,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은 바람 피울 위기까지 가고... 많이들 겪는 일이며,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가 당시의 '첨단 유행'을 따라갈만큼 세련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뒤에 쏟아져 나온 섹스와 '첨단' 라이프 스타일을 뒤섞은 '로맨틱 코미디'들과 이 영화를 비교해보면, 이 영화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 '첨단' 로맨틱 코미디들은 흉내만 내던 '세련됨'이 폭로되자 순식간에 촌스러워져버렸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구식 분위기는 세월이 갈수록 더 익어 보이거든요.

하긴 이 영화의 '촌스러움'은 꽤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에도 촌스러워 보였어요. 이명세의 영화들이란 게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분명 스타일리스트지만, 그의 스타일은 뚝배기처럼 질박한 느낌이 나는 예스러운 것입니다.

그가 스크린 위에 투사하는 이미지는 기억이라는 필터를 통해 재생된 추억의 공간입니다. 소품 하나하나마다 섬세하게 감정 이입이 되어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그것들은 기억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스타일은 회상조일 때 가장 잘 맞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나 [첫사랑]같은 영화 말입니다.

3.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맞아, 그랬지'일 겁니다. 이 영화가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 때문이지요. 영화는 삶의 디테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거기에 미래의 시점에서 작은 성찰을 담습니다. 성찰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보편성은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게다가 날 것으로 그냥 던져지는 삶의 조각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 신혼부부의 삶을 꽤 관대하고 다정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유머입니다. 억지로 과장된 유머를 조작해냈던 당시의 코미디들과는 달리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반대로 현실을 영화 속에 끌어들이며 유머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를 장식하는 극 중 유머의 대부분은 작은 좌절들입니다. 어떤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현실이 개입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미영의 '과거로 가는 버스 여행'의 결말입니다. 이 장면의 부드럽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박살내는 다방 아줌마의 대사는 꽤 복잡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대사 한 마디로, 영화는 미영의 여행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미영을 현실 속에 잡아둘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우린 늘 고장난 비행기처럼 어설픈 이륙과 충돌을 반복하는 동물이잖아요.

4.

비교적 평이한 스토리를 '참신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명세의 용감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만화책의 말풍선과 영화 패러디, 팬시 엽서의 레이 아웃이 뒤섞여 돌아다니는 이런 트릭은 당시엔 무척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주류 영화에서는요.

이런 트릭에 익숙해진 요새는 오히려 그 트릭의 복고적 요소들에 더 시선이 갑니다. 이 영화에 사용된 비주얼은 상당히 촌스럽습니다. 술집 네온 사인처럼 반짝이는 도입부의 하트를 보세요. 그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인용구나 (그것도 뻔하디 뻔한 헤르만 헤세!) 그 인용구를 장식하는 팬시 편지지같은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촌스러움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닙니다. 이명세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옛 문화적 경험에서 이런 것들을 끄집어 왔던 것이죠. 이 때문에 영화의 시간은 훨씬 더 복잡해집니다. 90년대 초 또는 80년대 말의 신혼부부를 그 시대의 감성으로 이야기하면서 그 스타일은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의 것에서 재료를 끌어와 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스타일은 90년대 말 또는 2000년대 초에 90년대 초를 회상하는 화자의 회고적 감정을 정당화하는 거죠.

5.

영화는 최진실과 박중훈이라는 두 배우의 스타 파워를 적절하게 이용한 '스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둘 다 참 잘했어요. 지금까지 최진실이 연기한 캐릭터 중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미영처럼 와닿는 인물도 없습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나갔거나 아니면 배우의 잠재력을 넘어서는 것이었죠. 박중훈의 코믹 연기도 오버 액션에 걸려넘어지지 않고 그럴싸하게 흘러가고요.

문제는 이 영화가 아니라, 이들 배우들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은 연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도대체 발전이 어디에 있는 건지.

6.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상업적 성공은 이명세라는 감독의 숨통을 잠시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10년이나 되는 흥행 실패작의 행렬은 기괴할 정도였어요. 모두 훨씬 나은 대접을 받을만한 재미있는 영화들이었는데 말입니다. (00/02/16)

D&P

기타등등

전에 해상도가 높은 포스터를 요청했었죠? 요청 이틀만에 구조 병력이 왔습니다. 위의 비디오 커버는 박인정님이 스캔해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