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흥식

주연
전도연....원주
설경구....봉수
진희경....태란
서태화....홍탁
허장근....규대
민경진....중년사내
최유선....희숙
박남희....학원 선생님
민을재....학원 선생님
문정희....여행원
진경....여행원
신혜경....여행원
강수아....여행원
진명선....지점장
전대병....대리
전광렬....과장
김태진....어린 봉수
박형선....봉수 엄마
조용구....원주 아빠
조민....어린 원주
이규정....원주 동생

1.

봉수는 모 아파트 단지내 한미은행 지점의 대리입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일도 잘하는 사람이지만 여자들과 인연은 없는 편이죠. 그는 비디오로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아내에게 메시지를 남기며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결혼 생활을 꿈꾸지만 정작 길건너 하버드 보습 학원의 수학 교사인 원주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러던 그에게 이혼한 옛 동창 태란이 다가오고...

2.

마치 그럴싸한 내용이라도 있는 것처럼 줄거리 소개를 했다면 그건 제 실수입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줄거리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기왕 시작한 거 다 까발릴까요? 봉수와 태란은 가까워지고 그 때문에 그는 조금씩 그에게 다가오던 원주를 외면합니다. 하지만 태란은 떠나고 그와 원주는 조금씩 수줍은 사랑을 시작하죠. 이게 다예요.

네, 결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이 영화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선 시작부터 스케일이 작은 영화이고,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것도 그럴싸한 줄거리를 풀어가는 대신 그 사이에 있는 세세한 일상의 자국을 잡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맞아, 저건 내 이야기야'까지는 아니더라도 '맞아, 저럴 거야'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겁니다. 섬세하게 골라낸 사실적인 어투에서부터 막 나왔다가 휴대폰을 찾으러 엉금엉금 집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원주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재미 대부분은 이런 삶의 작은 조각들을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봉수와 원주는 이런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그들은 에브리맨이며 에브리우먼이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얼떨결에 취직해서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치고는 좀 순진하고 숫기가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캐릭터들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하여간 이들은 영화 속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랑을 합니다. 특별히 로맨틱하거나 강렬한 감정으로 범벅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그네들의 삶과 상상력에서 벗어나 있지요. 그네들이 바라는 것은 적당히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삶의 동반자입니다. 봉수가 결혼과 정서적 안정에 매달리고 있고 원주가 조금 로맨틱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게 다르다면 다를 뿐이지요.

이야기는 봉수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영화는 원주 편을 들어주는 듯 합니다. 벌어지는 이야기의 일상성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토리는 결국 '운명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누가 뭐래도 봉수와 원주는 서로를 위한 존재입니다. 고장난 형광등에서부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민방위 훈련까지 세상 모두가 조금씩 그들을 맺어주기 위해 뛰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원주가 그처럼 적극적이었던 것도 그런 징조를 먼저 읽어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여기서부터 둘의 사랑은 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조금씩 마술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이 마술 모티브는 영화 시작부터 있죠. 봉수의 제대로 된 유일한 취미는 마술이고 그는 영화 중간중간에 작은 마술들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솜씨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한 적 없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아파트에 온 원주 앞에서 무덤덤하게 지폐 마술을 부릴 때까지는요. 아마 영화는 세상이 다 아는 그 평범함 속에 마술을 심어내는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3.

전도연과 설경구는 모두 좋은 배우이고 여벌의 테크닉 과시 없이 보통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냅니다. 둘 다 모두 무척 호감가는 사람들이고요. 아마 지나치게 귀여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정도 아양 정도는 관객들도 인정해줄 겁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예쁘고 귀엽습니다. 일상적인 디테일은 아주 잘 살리고 있지만 현실의 치열한 면에서는 살짝 빗겨가고 있어요. 그러나 이런 영화에서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특별한 강약없이 조용하고 담담하게만 흐르는 영화의 흐름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을 수도 있겠고, 그런 면은 흥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화끈한 재미를 기대하지 않는 관객들은 잔잔한 웃음을 상당히 많이 긁어가지고 극장문을 나설 겁니다. (01/01/02)

DJUNA

기타등등

시사회 끝에 주연 배우 둘과 감독이 나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 양반들 참 조용하더군요. '설경구씨가 직접 마술을 배웠나요?'와 '보습 학원이 도대체 뭔가요?'가 질문의 전부였답니다. 다들 무척 멋쩍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