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쥘리에트 비노쉬는 1964년 3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조각가 겸 무대 감독이었고 어머니는 배우였대요.

연기학교를 졸업한 뒤, 무대 연기와 여러 영화의 단역으로 경력을 시작한 비노쉬가 최초로 중요한 역을 받았던 영화는, 그 소문도 요란했던 장 뤽 고다르의 [마리아께 경배 Je vous salue, Marie (1985)]였습니다. 배우로서 제대로 된 주목을 받은 영화는 같은 해에 개봉된 앙드레 테시네의 [랑데뷰 Rendez-vous (1985)]였고요. [나쁜 피 Mauvais sang (1986)]가 그 다음 해에 나왔으니 순탄하기 그지 없는 시작이었지요.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비노쉬는 2년 뒤 [프라하의 봄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8)]으로 최초의 영어 영화에 도전했고 그 역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뒤로 비노쉬는 프랑스와 미국, 영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중이지요. 상복도 많아서 [세가지 색: 블루 Trois couleurs: Bleu (1993)]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잉글리시 페이션트 The English Patient (1996)]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요.

2.

[선셋 대로]의 노마 데스몬드는 자기가 출연한 무성 영화들을 보며 외칩니다. "우린 대사 같은 건 필요 없었어! 우리에겐 얼굴이 있었으니까!"

고백하지만, 무성 영화 시대의 글로리아 스완슨의 표정 연기에 그렇게 감명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노마 데스몬드의 이 외침은 쥘리에트 비노쉬한텐 근사하게 먹힙니다. 쥘리에트 비노쉬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 사람의 훌륭한 얼굴이니까요.

비노쉬의 얼굴은 카트린느 드뇌브나 엠마누엘 베아르처럼 화려한 아름다움을 과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친근한 얼굴이지요. 이 사람의 얼굴이 주목을 끄는 것은 그 자체의 소박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 얼굴 위에서 펼쳐지는 놀랄만큼 다양한 드라마 때문입니다.

[블루]는 비노쉬의 이런 장점을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키에슬롭스키가 무엇을 의도하려 했건, [블루]라는 영화의 진짜 가치는 비노쉬의 얼굴 클로즈업에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자유'에 대해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비노쉬의 얼굴이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블루]는 비노쉬의 얼굴에 대한 시였습니다.

비노쉬의 표정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솔직해 보여서, 관객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연기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비노쉬라는 자연인도 그런 '열린 얼굴'을 하고 있을 거고 그게 종종 연기에 반영이 되는 것이겠지요. [나쁜 피]에서 알렉스의 저글링을 보며 좋아하는 안나의 표정을 보세요. 그것까지 연기였다면 저흰 정말 슬퍼질 겁니다.

그러나 자연인 비노쉬의 이 아름다운 특성은 배우 비노쉬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될 때 가장 빛을 발합니다. [나쁜 피]와는 달리 [블루]나 [퐁뇌프의 연인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보여준 비노쉬의 연기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큼 그렇게 '열려'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블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엄격한 무표정함이지요. [블루]에서 비노쉬가 시를 썼다면 그건 고전주의자의 엄격한 소네트였습니다.

3.

비노쉬가 이만큼 국제적인 명성과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이 꽤 다양한 영어권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프라하의 봄]이나 [잉글리시 페이션트], [데미지]와 같은 영화들을 빼고 비노쉬의 경력을 이야기하기는 힘듭니다. 이 사람의 중요한 영화 중 거의 절반은 영어 영화지요.

다시 말해 이 배우의 영어 실력이 상당히 좋다는 말입니다. 요새처럼 툭하면 국제적으로 흘러가는 영화판에서 이런 건 상당히 유익한 능력이지요. 비노쉬의 영어는 순수한 영어권 인물을 연기할 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레이프 파인즈와 공연한 [폭풍의 언덕]은 좀 지나친 모험이었습니다) 이 배우의 연기폭을 넓히는 데는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린 이게 상당한 노력의 결과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프라하의 봄] 때만해도 불어 악센트 때문에 역을 잃을 뻔하던 사람이 [잉글리시 페이션트] 때에는 영어 연기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으니까요. 물론 그 때 그 사람이 연기한 캐릭터는 퀘벡 출신이었지만요.

아마 이 글의 교훈은 '크게 놀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인 것 같군요. :-)

4.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후 비노쉬의 영화 소문은 좀 뜸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활동이 멎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어 연극으로 영국 무대에 서기도 했고 앙드레 테시네의 [알리스와 마르탱 Alice et Martin (1998)]에 출연하기도 했으니까요. 얼마 전에는 디안느 퀴리의 새 영화 [세기아들 Les Enfants du siècle (1999)]에서 조르쥬 상드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사생활은... 잠시 레오스 카락스와 애인 사이였지만 갈라졌습니다. 그 뒤에 사귀었던 스쿠버 다이버인 남자 친구 사이에서는 아들이 하나 있고요. 요새는 [지붕 위의 기병]에서 함께 공연했던 올리비에 마르티네스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99/12/25)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