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젤라 맥신 오브라이언은 1937년 1월 15일 샌디에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이 모델로 연예계에 데뷰했고 41년에 [Babes on Broadway]에서 1분 짜리 단역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어요.

어린 안젤라 오브라이언을 스타로 만든 최초의 영화는 [Journey for Margaret] (42)였습니다. 이름을 마가렛 오브라이언으로 바꾼 것도 이 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극중 캐릭터의 이름에 예명을 맞추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지요.

그 때부터 오브라이언의 경력은 로켓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절정은 1944년이었지요. 오브라이언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셋이 44년에 나왔습니다. [Meet Me In St. Louis], [Jane Eyre], [The Canterville Ghost]. 그 중 [Meet Me In St. Louis]로 오브라이언은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아역 배우의 운명은 오브라이언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점점 자라고 있었던 거죠. [The Secret Garden] (48), [Little Women] (49)에 이르기까지 오브라이언은 알찬 경력을 이어갔지만 그 뒤로는 내리막길 뿐이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지금까지 연기 경력을 이어오고 있지만 성인배우로서 주목할 만한 영화는 없습니다.

2.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참 매력적인 아이였어요. 이 꼬마의 예쁜 몽키 페이스와 천진난만한 귀여움은 쉽게 때를 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배였던 셜리 템플과 마찬가지로 오브라이언도 자기 매력 하나로 영화 하나를 충분히 구제할 수 있는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꼬마는 '타고난 배우'였습니다. 이 어린 배우의 야무진 재능에 놀란 라이오넬 배리모어는 "지금이 중세라면 이 아이는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했을 거야!"라고 외쳤다고 하죠. 이 꼬마가 촬영장에서 태평스럽게 "제가 울 때 눈물을 그냥 흘러내리게 할까요, 아니면 중간에서 멈추게 할까요?"라고 물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전설이고요.

오브라이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인 수준의 연기 테크닉을 구사한 배우였고 감정 조절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특히 아무런 준비 없이 울어재끼는 데에는 헐리웃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헐리웃에서 MGM의 'Town Crier'라고 불리우던 배우가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준 앨리슨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둘은 [Little Women]에서 함께 공연하기도 했지요.) 아역 배우들에게 우는 역이 지금보다 많이 주어졌던 당시에는 그게 큰 자산이었을 거예요.

물론 그게 오브라이언이 가진 재능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의 대표작인 [Meet Me St. Louis]를 보세요. 이 영화의 오브라이언은 서너 개의 역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코미디에서 죽음과 매장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기괴함, 'Town Crier'의 재능을 멋지게 발휘하는 감상적인 드라마식으로 캐릭터의 감정이 종횡무진하는 중에도, 이 놀라운 꼬마는 단 한 번도 삐끗하는 일이 없습니다. 참 대단한 아이에요.

3.

왜 이 재능도 있고 외모도 따라주는 배우가 성인 배우로 성장하지 못했을까요? 요새 관객들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만 합니다. 요새는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성장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탈리 포트먼, 크리스티나 리치, 안나 파퀸과 같은 배우들을 보세요. 모두들 '아역배우 징크스가 뭐야?'하면서 태연하게 경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이 활동했던 시대는 달랐습니다. 대충 두 가지가 가로 막고 있었던 거죠. 하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뻣뻣한 체계였고 다른 하나는 그 체계가 고정한 아역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이었습니다.

현대 헐리웃에서는 아역이 훨씬 복잡하고 틴에이저 배우 역시 충분한 시장이 있어서 무리없이 아역과 성인 배우 사이의 갭을 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역 배우는 아역 배우일 뿐이었고 그 배우들은 아역만 연기해야 했습니다. 스튜디오는 그 고정된 이미지를 위해 배우들을 투입했고 당연히 그런 계획은 아이의 성장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역 배우가 자라는 것을 배우의 성장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역배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었죠. 오브라이언이 성인이 되자, 그들은 그녀를 외면해버렸습니다. A급 영화는 [Little Women]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벗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사실 기회도 별로 없었던 거예요.

4.

오브라이언의 영화를 단 하나만 봐야 한다면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선택은 아주 쉽습니다. [Meet Me St. Louis]죠. 오브라이언은 언제나 매력적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만큼 화려한 매력을 발산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아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하죠(I was drunk last night, dear mother...)

[The Canterville Ghost]와 [The Secret Garden]도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여기서는 구하기가 힘들군요. [The Secret Garden]은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적 있지만 그렇다고 구하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전성기 오브라이언 영화는 [Little Women] 뿐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비디오로도 나와있고 종종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방송됩니다. 언젠가 저희가 소개한 적이 있는 디즈니 영화 [Amy]에서 중년 간호사로 잠시 나오기도 했으니 두 개가 되는군요.

5.

오브라이언의 오스카 트로피는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 사라졌다가 90년대 초에 벼룩 시장에 나타났습니다. 이 트로피는 경매에 붙여질 예정이었지만 도난당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물건을 산 사람들은 경매를 취소하고 트로피를 오브라이언에게 넘겨주었답니다. 그 때 나이든 오브라이언의 사진이 신문에 난 걸 보고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했던 게 기억나요. (9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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