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드니 프와티에는 분명 중요한 흑인 스타입니다. 프와티에가 후대의 흑인 배우들에게 끼친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고요. 올해 아카데미가 그에게 바친 공로상은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와티에가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 흑인 배우들의 선구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프와티에 이전에도 흑인 배우들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폴 롭슨입니다.

2.

Jericho (1937)

폴 버스틸 롭슨은 1898년 4월 9일에 노예 출신의 목사와 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훌륭한 학생이었던 그는 장학금을 받아 러트거스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그는 그 대학에 입학한 세 번째 흑인 학생이었습니다.

폴 롭슨의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 미식축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대학의 첫번째 흑인 미식 축구 선수였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그의 이름은 러트거스 대학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콜롬비아 법대를 다니는 동안 그는 동창이던 에스메랄다 카르도조 굿과 결혼했습니다. 그에게 배우 재능이 있다는 걸 간파하고 무대에서 서게 도와준 사람도 바로 그의 아내였죠.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 여러 아마추어 무대를 전전하던 그는 1921년 본격적인 전문 배우로 무대에 서기 시작합니다. 무대에서 그가 가장 격찬을 받은 작품은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 Emperor Jones]였습니다.

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는 서서히 스타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우선 그를 위해 역이 만들어진 유명한 뮤지컬 [쇼 보트 Show Boat]가 있었습니다. 사정상 그는 초연 때 참가하지 못했지만 런던 프로덕션에서는 공연했습니다. 그가 평생동안 끊임없이 가사를 고쳐가며 불렀던 유명한 노래 [Old Man River]도 처음엔 이 작품의 소박하고 안전한 삽입곡이었죠.

1928년, 폴 롭슨은 무대에서 백인 공연자들과 함께 오델로를 연기한 최초의 흑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1933년 그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습니다. 영화 버전 [황제 존스]에 출연하면서 백인 조연 배우들을 주변에 깔고 당당하게 주연을 맡은 최초의 흑인 배우가 되었던 거죠.

30년대 중반부터 롭슨은 주로 영국 영화계에서 일을 했습니다. 미국 영화계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과 그로 인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지요. 영국 영화계는 그가 원했던 것만큼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큰 역들을 그에게 제공해주었고 대접도 상당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솔로몬 왕의 보물 King Solomon's Mines (1937)]이었죠.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움보파 왕자의 비중은 소설의 주인공인 앨런 쿼터메인의 비중보다 컸습니다. 그의 이름도 쿼터메인 역의 세드릭 하드윅보다 먼저 나왔고요.

1942년, 그는 할리우드로 돌아와 [맨하탄 이야기 Tales of Manhattan]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 이후 흑인 배우들에게 더 좋은 역이 주어지기 전에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뒤로는 콘서트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전후 그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친소 경향이 강했던 좌익 인사였으며 언제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에게 매카시 시대의 미국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죠. 롭슨이 인권운동에 점점 깊이 관여하는 동안 다양한 압력이 그에게 가해졌습니다. 그는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여권을 빼앗겼으며,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고, 죽기 2년 전까지 FBI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폴 롭슨은 1976년 1월 23일 사망했습니다. 장례식 때는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객으로 참석했다고 해요.

3.

Song of Freedom (1936)

현대 관객들이 배우 폴 롭슨의 연기를 제대로 감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건 롭슨의 한계가 아니라 당시 그가 살았던 영화계의 한계였죠. 그는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여러 편의 괜찮은 영화들에 출연했고, 그 작품들만으로도 폴 롭슨이라는 배우의 개인적 매력을 알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그는 결코 시드니 프와티에처럼 스크린 화면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한 연기를 보일 기회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린 그를 배우보다는 가수로 기억합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도 그의 근사한 베이스-바리톤 목소리였고요. 그의 많은 영화들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빛내기 위해 설정되었습니다. 심지어 뮤지컬과는 전혀 상관 없는 [솔로몬 왕의 보물]에서도 세 곡이나 불러대니까요.

그러나 폴 롭슨의 진짜 업적은 그의 스타성에 있었던 듯 합니다. 그는 미국 연예계 최초로 존중받는 영화 스타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롤 모델이었고 그런 자신의 명성을 낭비한 적 없었습니다. 그는 미래의 수많은 후배들에게 그들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롭슨을 기억해야 할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겠지요. (02/03/27)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