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Nonzee Nimibutr

주연
인티라 자로엔푸라....낙
Intira Jaroenpura....Nak
위나이 크라이부트르.....막
Winai Kraibutr....Mak

낙과 막

"자국에서는 [타이타닉]의 흥행 성적을 깨뜨린..."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몇 번이나 들었던 걸까요? 그리고 과연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당연한 일일까요? 아니면 순전히 홍보용 문구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정말 1997년 이후 갑작스럽게 여러나라의 내수용 영화들이 갑작스러운 인기를 끌었던 걸까요? 마지막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타이타닉]의 흥행이 어떤 역할을 했던 걸까요?

이유가 어떻건,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은 자국내에서 [타이타닉]의 흥행 성적을 깬 태국 영화입니다. 지금도 이 영화는 태국 영화의 르네상스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죠.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이야기는 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도 수많은 텔레비전 버전이나 영화 버전이 나오기도 했고요.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자국 관객들에겐 거의 [춘향전]의 새 버전을 보는 것과 같았을 거예요.

[낭낙]의 원작은 실화를 자처하는 태국 민화입니다. 1860년대에 태국의 작은 마을에 낙과 막이라는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막은 임신한 아내 낙을 집에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납니다. 간신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막은 아이를 낳은 낙과 감격어린 재회를 해요. 하지만 막은 한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낙이 몇 개월 전에 아기를 낳고 죽었다는 걸요.

[낭낙]에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와 피튀기는 호러 장르가 섞여있습니다.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라는 건 위에 제가 언급한 줄거리만 읽으신 분들도 눈치채셨겠지요. 피튀기는 호러인 건 낙이 그냥 얌전히 서방님을 기다리는 귀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낙은 막이 진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막에게 경고하려 하는 이웃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하거든요. 결국 참다 못한 마을 사람들과 무당들, 불교 승려들이 나서면서 영화는 물리적인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됩니다.

저같은 외국 관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영화의 이국적인 분위기입니다. 물과 열대림으로 고립된 낙과 막의 오두막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귀신들린 집입니다. 벌어지는 이야기는 특별히 독특할 건 없지만 그 이야기가 태국 특유의 후덥지근한 분위기와 불교적인 요소, 몇몇 인상적인 문화적 장치에 의해 진행되면 영화는 독특한 멋을 풍기게 됩니다.

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넘어서면 우린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온 남편을 맞는 죽은 아내의 귀신 이야기는 아주 흔한 편이죠. 특히 동양에서는요. 친근한 이야기 덕택에 영화는 낯선 그림에 의존하는 이국적이기만 한 예술품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이 영화를 개별 작품으로 평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태국 영화의 전통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외국 관객들은 많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축축한 섹슈얼리티의 분위기가 과연 감독의 개성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지리적인 특성일까요? 빈랑자에 입이 검붉게 물든 귀신 낙의 모습은 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요?

마찬가지로 논지 니미부트르의 스타일과 능력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 그의 단점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산만한 편집과 각본은요. 하지만 그의 장점들이 과연 그 사람한테서 온 것인지는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제가 자신있게 지적할 수 있는 테크닉상의 장점은 특수 분장입니다. 특히 막의 꿈 속에서 죽은 친구가 갑자기 썩어가는 부분은 아주 기초적인 특수 효과와 편집만으로 근사하게 연출해낸 장면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지도 모릅니다. 전 앞으로도 [낭낙]을 태국 관객들처럼 깊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영화가 주는 불길한 축축함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거칠지만 보편적인 감정에 의해 조율된 이야기도 상당히 강한 정서적 힘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에요. 단점으로 지적한 영화의 투박함도 종종 소박한 이야기와 썩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단지 이 인상이 영구적인지 알려면 태국 영화를 몇 편 더 보고 그 동네에 대해 연구를 좀 더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03/08/18)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9월 개봉 준비중인 영화인데, 바로 저번 일요일 새벽에 홈 CGV에서 정식 방영을 했답니다. 텔레비전 방영 이후 극장 상영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아슬아슬한 스케줄은 조금 이상해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