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클래런스 브라운 Clarence Brown

주연
엘리자베스 테일러....벨벳 브라운
Elizabeth Taylor....Velvet Brown
미키 루니....마이 테일러
Mickey Rooney....Mi Taylor
도널드 크리스프....브라운 씨
Donald Crisp....Mr. Brown
앤 리비어....브라운 부인
Anne Revere....Mrs. Brown
안젤라 랜즈버리....에드위나 브라운
Angela Lansbury....Edwina Brown

1.

자, 과제가 있습니다. 말과 소녀를 다룬 어린이용 소설의 줄거리를 지금 당장 만들어보세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나, 둘, 셋!

끝났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제가 알 도리는 없죠.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셔널 벨벳]과 거의 비슷할 거라고도 확신할 수 있어요. [내셔녈 벨벳]의 줄거리는 '말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자!'라는 과제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그리고 가장 평범한 해답이니까요.

대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답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 벨벳 브라운은 파이라는 이름의 말썽꾸러기 말에 반해버립니다. 운좋게도 복권으로 파이를 사들인 벨벳은 전직 기수인 떠돌이 마이의 도움을 받아 파이를 훈련시키죠.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그랜드 내셔널 스티플체이스입니다. 남자로 변장한 벨벳은 파이와 함께 이 유명한 장애물 경주에서 그들의 능력을 시험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공식적일 수 있을까요?

2.

[내셔널 벨벳]은 저에게 '추억의 영화'입니다. 어렸을 때 MBC에서 방영한 이 영화의 더빙판을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얼마 전 이 영화를 AFKN에서 해주어서 다시 보았습니다. 보기 전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보았을 때 그 감흥이 사라질 지도 몰랐기 때문이죠.

괜한 걱정이었어요. 전 지금도 이 영화에 대해 좋은 말 밖에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범적이고 공식적인 줄거리라고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공식을 기가 막히게 잘 살렸습니다. 헐리웃의 스튜디오 시대 전성기 장인들이 진짜 솜씨를 발휘한 결과였죠.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기본 공식의 가능성을 짜내는 것은 '독창적'이 되는 것보다 훨씬 힘드는 일입니다.

[내셔널 벨벳]은 훌륭한 대중 문화 상품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캐릭터들은 단순하지만 생기발랄하고 공감하기 쉽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진실하며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이 펄펄 살아있는 느낌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합니다.

게다가 스토리는 정도를 알고 때때로 관객들을 앞서가기도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벨벳과 파이를 경주에서 이기게 할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전형적이 될 겁니다. 영화는 훨씬 좋은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벨벳과 파이를 진짜 승자로 만들어 관객들을 흐뭇하게 만들면서도 전형성에 빠지지 않는 샛길을 택한 것이죠.

영화는 예상 못한 깊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벨벳의 어머니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묵하고 현명한 가정주부'의 스테레오 타입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캐릭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도버 해협을 건넌 수영 선수라는 과거를 드러냅니다. 벨벳의 어머니가 벨벳에게 자신의 업적을 '이양'하는 장면은 소박하지만 인상적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모녀인가요.

3.

아무리 생각해도 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팬은 아닙니다. 이 배우의 달짝지근한 사카린과 같은 이미지엔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나 전 이 배우의 아역 시절은 예외로 치고 싶습니다. [내셔녈 벨벳]에서 테일러는 매력적입니다. 성인수준으로 연기 테크닉을 구사하면서도 솔직하고 활기찹니다.

슬슬 성인 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미키 루니 역시 이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그의 '착한 이웃집 소년' 이미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어두운 면을 거부하지 않은 거죠. 물론 그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이미지가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될 리도 없었겠지만요.

푼수기가 있는 벨벳의 아버지를 연기한 도널드 크리스프도 좋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벨벳의 어머니를 연기한 앤 리비어입니다. 리비어의 경건한 외모와 위엄있는 연기는 묵직한 추가 되어 영화를 안정시킵니다. 리비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테일러의 금발머리 언니로 나오는 배우는... 젊은 시절의 안젤라 랜즈버리입니다! (99/05/02)

DJUNA

기타등등

1.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요. 전 거의 10년동안 이 영화를 흑백으로 알고 있었답니다!

2. '필름스'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영화는 최근에 위성방송을 통해 [녹원의 천사]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