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문여송

주연
임예진
이덕화
김보연
문오장
신구
김윤경

영수와 정아

'이성교제'. 엄청 건전한 단어가 아닙니까? 전 이 단어가 건전하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는 걸 거의 들어본 적 없어요. 반대로 제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 단어를 말할 때는 십중팔구 '건전'이라는 말이 따라붙지요. 현대어에서 '건전'과 '이성교제'는 떼어낼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70년대엔 사정이 달랐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진짜 진짜 잊지마]가 바로 그 증거지요. 문여송의 이 히트작에서 주제는 이성교제입니다. 이덕화가 연기한 영수는 기차 안에서 이웃 학교에 다니는 임예진 캐릭터 정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성교제'를 시작하지요.

요새 관객들의 눈으로 보면 얘들은 정말 건전하게 놉니다. 섹스도 안 하고 무도장에도 안 가고 그렇다고 학교 공부를 엄청나게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에요. 심지어 주변 보호자의 허락도 받았어요. 도대체 문제가 될 일이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다릅니다. 이들의 교제는 투서의 대상이 되고 스캔들이 됩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건 상관 없어요. 교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정아를 짝사랑 하는 불량학생들의 참견은 오히려 하찮습니다. 참, 여담이지만 이들이 나오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흉내내고 있어요. 눈치채셨겠지만요.

이들을 옹호하는 것은 비교적 머리가 깨어있고 진취적인 교사들입니다. 특히 새로 부임한 영수의 여자 담임교사가 그렇죠. 이 캐릭터의 역할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성교제에 대한 대중의 관점을 바로잡고 그들의 행동이 정당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장에도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린 '건전함'과 '이성교제'가 늘 한 문장에 들어가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문여송 시절만 해도 이 두 단어를 연결하는 건 굉장히 쿨한 일이었거든요. 그 습관이 이런 영화나 매체를 통해 반복되다보니 엄청나게 언쿨한 언어습관이 만들어 진 것이죠.

사실 [진짜 진짜 잊지마]도 '건전한 이성교제'와 맞먹을 정도로 언쿨합니다. 요새 관객들은 "우린 아직 어른이 아니잖아!"를 외쳐대며 미성년자의 책임감을 스스로 인식하고 교과서적인 건전한 대사들만 골라서 읊는 주인공들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귀엽게만 보일 걸요. 이들에겐 동시대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들이 가졌던 진짜 쿨함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었어요. '이성교제' 앞에 '건전함'이 따라 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당시의 하이틴 로맨스는 어른들의 교정과 검열을 거쳐야 했으니까요. 아무리 임예진, 이덕화를 보려 수많은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봤고 결말이 주제와는 상관없는 비극적 로맨스로 끝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설교였어요. (06/11/02)

DJUNA

기타등등

1. 이덕화 입술은 어쩌자고 그렇게 붉던지. 메이크업이 임예진보다 더 진했던 것 같아요.

2.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영화지만 영수의 도움으로 정아가 기차에 매달리는 장면은 은근히 에로틱했죠. 아마 [진짜 진짜] 시리즈 중 가장 섹스신과 가까운 장면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