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성홍

주연
김승우....왕사장
진희경....왕부인
박상면....주방장
이범수....팔봉이
김영호....홍사장
김선경....홍부인
송승현....묘령
백재진....일도

1.

김성홍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전작인 [손톱]과 [올가미]는 보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각본을 담당했던 [투 캅스]나 [마누라 죽이기]는 조금 편하게 보긴 했지만, 사실 그 작품들도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뭐, 제 취향과 그 양반 취향이 달라서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전 제 취향이 그 양반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김성홍이 소재를 구하고 다루는 방식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구석이 있는데, 그걸 제가 '개인의 취향 문제'로 넘기고 가만히 있는다면 제 정신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것입니다.

[신장개업]은 그 중 나아보입니다. 적당한 '독창성'과 정도를 알고 무리하지 않은 유머가 있으며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리듬을 잃지 않으니 호흡 조절에도 꽤 성공한 셈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더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김성홍의 영화 중 가장 보기가 편했다는 것입니다. 토막살인과 사람고기가 소재로 나오는 영화지만 이 영화의 '블랙 유머'는 [손톱]이나 [올가미]보다 훨씬 덜 혐오스럽습니다.

2.

'컬트 코미디'라는 허풍섞인 조어를 달고 선전하는 영화입니다만, [신장개업]은 기질적으로 온화한 편이며 내용도 안전합니다. 이 영화의 마케팅 부서에서는 [신장개업]이 새로운 장르의 영화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예전부터 장르화되어 왔습니다. 이미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으며 관객들의 기대 또한 사전에 정해져 있다는 말이지요. [신장개업]을 가장 즐겁게 본 관객들은 이런 룰에 익숙한 사람들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스타일이 대충 이 장르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김성홍의 붕 떠있고 약간 오버하는 스타일은 '최상급의' 블랙 코미디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당히 소란을 피우는 요란한 코미디로는 꽤 그럴 듯하게 돌아갑니다. 하긴 강원도 시골 구석의 조그만 읍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철저하게 지적인 냉정함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수선스러운 분위기에는 '토종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토종냄새'가 난다는 것은 영화가 마땅히 도달했어야 할 극한까지 닿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종류의 블랙 코미디는 우리 풍토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니까요.

3.

이 영화의 결말은 조금 어정쩡합니다. 사실 이런 블랙 코미디의 결말을 내는 것은 쉽지가 않죠. [조용한 가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쩌겠어요? 진상을 폭로하고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렇다고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어중간한 어느 점에서 끝내야 할 판인데 그런 어정쩡함을 유지하면서도 힘있는 결말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영화는 마무리를 살짝 흐릿하게 하고 순환구조를 살짝 트는 결말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디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주인공들에게 너무 관대해서 클라이맥스를 충분히 구축할 만큼 힘을 보태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아직도 지나치게 마음이 여립니다.

4.

김승우의 연기 변신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전 이 양반이 '왕자'역을 하는 건 본 적 없습니다. 영화에서 본 건 [돈을 갖고 튀어라]가 전부니 이 영화의 코믹 연기가 그렇게 변신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충 맞아보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튀는 것도 아니지만요.

보다 확실하게 눈에 뜨이는 것은 진희경의 변신입니다. 하지만 역이 작고 연기할 거리도 적어서, 그 변신은 주로 코디네이션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는군요.

가장 매끄럽고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준 사람은 박상면과 이범수로, 이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불평할 거리가 없습니다. 충분히 재미있고 감정 이입도 쉽습니다. (99/05/15)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마케팅 무기인 '컬트 코미디'라는 슬로건에 대해서는 이미 영화낙서란의 이 글에서 불평한 적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