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주연
안소니 홉킨즈....리처드 M. 닉슨
Anthony Hopkins....Richard M. Nixon
조운 앨런....팻 닉슨
Joan Allen....Pat Nixon
파워즈 부스....알렉산더 헤이그
Powers Boothe....Alexander Haig
밥 호스킨즈....J. 에드가 후버
Bob Hoskins....J. Edgar Hoover
폴 소비노....헨리 키신저
Paul Sorvino....Henry Kissinger
메리 스틴버겐....한나 닉슨
Mary Steenburgen....Hannah Nixon
제임스 우즈....H. R. 홀드먼
James Woods....H. R. Haldeman

1.

[닉슨]의 가장 기괴한 점은 분명히 닉슨에게 적대적인 인물인 올리버 스톤이 놀랄만큼 그에게 동정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언제나 멀티미디어 정치 팜플렛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쏟아냈던 스톤이 아리스토텔레스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친근한 형식의 순수한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우연의 산물입니다. 스톤은 지금까지 늘 그의 쪽에 있는 사람들--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그가 숭배했던 사람들, 그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에 대해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영화의 대부분은 모두 어떤 외침이었고 저항이었으며 전투였습니다.

소란스러운 여러 전투를 마치고, '닉슨'이라는 소재가 기다리고 있는 '적진'에 뛰어 들었을 때, 그는 여전히 자기가 전투를 하고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무기는 적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적에 대해서도 감정이입은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닉슨]은 닉슨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서 다소 멀어진 대신 한 결점있는 영웅의 몰락에 대한 장려하고 바로크적인 비극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닉슨]는 스톤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주인공의 주변에 극단적으로 채색된 조연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 대조가 워낙 분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스톤의 영화는 무척이나 바로크 적으로 보입니다.

[닉슨]에서 그런 바로크적인 요소는 그의 다른 영화보다 훨씬 분명하게 두드러집니다. 그런 강한 음영이 닉슨이라는 주인공에까지 작용하니까요. 그는 지금까지 주도적인 인물들에겐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킬 수 있게 아량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닉슨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 없죠. 닉슨은 적이니까! :-) 그 결과 영화 속의 닉슨은 거대하고 인상적인 괴물로 묘사됩니다. 모든 것들은 엄청나게 확대되고 명암은 극대화됩니다.

안소니 홉킨즈라는 훌륭한 배우로 인해 이 캐리커쳐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찾게 됩니다. 그는 분명하게 하나의 캐리커쳐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거대함 속에 인간적인 요소들을 뚜렷하게 새겨넣기 때문에 관객들은 충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닉슨]에는 또다른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데, 그 인물은 바로 조운 앨런이 연기한 팻 닉슨입니다. 이 캐릭터는 일단 이 거창한 영화에 차가운 객관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런 기능을 잊더라도 조운 앨런의 멋진 연기로 인해 팻 닉슨은 리처드 닉슨과는 다른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부여받습니다. 차갑고 이성적이며 어딘가 억압당한 듯한 이 퍼스트레이디한테는 지금까지 스톤의 영화 속에서 다소 가볍게 묘사되었던 여성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닉슨 부부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척 평면적입니다. 후버는 그의 동성애적인 경향만 물고 늘어지는 것 같고 키신저는 어리숙한 바보처럼 보이고 홀드먼은 성미 급한 악당입니다. 헤이그 정도나 어느 정도 존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그의 성격 묘사도 미미한 편이죠. 마찬가지로 중공과의 수교, 데탕트와 같은 닉슨의 중요한 업적도 워터게이트에 밀려 가볍게 묘사된 편입니다. 사실 그런 것까지 물고 늘어졌다면 영화는 한없이 길어지고 중심도 없어졌겠지요.

3.

[내추럴 본 킬러]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도 16밀리와 35밀리, 흑백과 칼라, 필름과 티비 화면들 뒤섞는 MTV식 편집이 사용됩니다. 사실 수많은 매체에 자신의 흔적을 발자국처럼 남기는 정치가라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이 이상 적절한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시도 때도 없는 흑백 묘사의 삽입은 닉슨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관객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절제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예요.

4.

올리버 스톤에게 [시민 케인]이 얼마나 중요한 모델이었을까하고 궁금해한 적이 꽤 많았는데, [닉슨]의 경우는 분명히 노골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시민 케인]의 다양한 인용을 찾아 즐기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올리버 스톤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의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닉슨]이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해 '성숙'하게 느껴졌다면 분명히 그 이유 때문이겠지요. (96/03/05)

D&P

기타등등

조안나 고잉이 단역이지만 아주 인상적인 인물로 잠시 나오지요. 닉슨이 학생들과 즉석 토론을 벌일 때, "그건 시스템의 문제지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