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랭 레네 Alain Resnais

주연
사빈 아제마....질베르트 발랑드레
Sabine Azéma....Gilberte Valandray
이자벨 낭티....아를레트 포메락
Isabelle Nanty....Arlette Poumaillac
오드리 토투....위게트 베르베리
Audrey Tautou....Huguette Verberie
피에르 아르디티....조르쥬 발랑드레
Pierre Arditi....Georges Valandray
랑베르 윌슨....에릭 톰슨
Lambert Wilson....Eric Thomson
다니엘 프레보스트....파라델
Daniel Prévost....Faradel
자릴 레스페르....샤를레
Jalil Lespert....Charley

질베르트와 조르쥬

[입술은 안돼요]는 앙드레 바르드의 1925년 작 동명 오페레타를 각색한 작품으로, 제대로 운이 맞았다면 모리스 슈발리에가 주연하고 에른스트 루비치나 루벤 마물리안이 감독한 30년대 할리우드 영화가 되었겠죠. 유성영화 초기인 31년에 프랑스에서 한 번 만들어진 적도 있다고 하고요. 하지만 운명의 힘은 정말로 괴상해서, 이 오페레타의 결정판 각색물은 알랭 레네가 감독한 2003년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이나 [지난 해 마리앵바드에서]와 같은 그의 누벨 바그 대표작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소 괴상한 선택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죠. 이미 그는 1986년에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연극을 충실하게 무대에 옮긴 [멜로]를 만든 적 있습니다. 이번에도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20년대 무대극을 하나 골라 비교적 충실한 각색물을 만드는 거죠.

영화의 내용은 전형적인 거실 코미디입니다. 주인공 질베르트는 사업가인 조르쥬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하지만 질베르트에게는 조르쥬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조르쥬와 결혼하기 전에 에릭 톰슨이라는 미국인과 결혼했었다는 거였죠. 그걸 모르는 조르쥬가 톰슨과 사업계약을 맺기 위해 그를 집으로 데려오자 질베르트는 난감해집니다. 게다가 여기엔 질베르트를 짝사랑하는 젊은 화가 샤를레와 샤를레를 또 짝사랑하는 위게트가 말려들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군요. 이건 줄거리가 아니에요. 이야기 전체가 구식 서구권 코미디의 관습이죠.

30년대 관객들은 이 뻔한 이야기를 별다른 생각없이 순수한 오락으로 즐겼을 겁니다. 31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나 제가 상상하는 가상의 루비치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였겠죠. 심지어 만약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그들에게 알랭 레네의 영화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그들의 반응은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그럴 수 없습니다. 알랭 레네가 만들었으니까요. 그것도 2003년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몇 겹의 레이어를 통해 이 영화를 보게 됩니다. 요새 같으면 인종주의로 욕을 먹었을 조르쥬의 외국인 혐오 발언을 우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20년대의 관점에서? 아니면 2000년대의 관점에서? 유성영화 초기나 무성영화 시대의 고풍스러움을 위장한 스타일은 30년대 풍입니까, 아니면 누벨 바그 풍입니까, 아니면 레네는 그 두 가지 복고풍을 버무려 새로운 복고 스타일을 만든 겁니까? 관객들이 아무리 단순하게 보려고 해도 그 레이어들은 끊임없이 눈 앞에 등장합니다. 늙은 거장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짐이죠.

하긴 그게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레네가 훌륭한 감독이라고 해도 그는 루비치가 아니니까요. 그와 정면 대결을 하느니, 차라리 그냥 알랭 레네로 남아 알랭 레네식 지적인 뮤지컬을 만들면 되지요. 그 '지적인' 느낌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레네라는 이름을 듣고 그냥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전혀 확신할 수 없긴하지만요.

그럼 영화 자체는? 그냥 호사스러운 20년대 패션으로 차려입은 노련한 배우들이 나오는 경박한 소극이에요. 노래는 달콤하고 유려하지만 그렇게까지 귓속에 잘 남는 편은 아니고 줄거리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흐릿해지지요. 하지만 사빈 아제마, 피에르 아를레티, 랑베르 윌슨이 보여주는 경쾌한 연기는 그냥 좋습니다. 특히 영화 내내 미국식 프랑스어로 떠들어대는 랑베르 윌슨은 너무 귀여워요. (07/08/28)

DJUNA

기타등등

포스터에 얼굴마담으로 나오는 오드리 토투는 그냥 조연이죠. 토투의 팬이 포스터만 보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조금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어요. 이 레이아웃은 미국 DVD 커버의 디자인을 살짝 변형한 것인데, 프랑스판 포스터는 보다 정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