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율리아 폰 하인츠 Julia von Heinz

주연
파울라 칼렌베르크....칼라
Paula Kalenberg....Carla
마리-루이즈 슈람....루시
Marie-Luise Schramm....Lucie
벤야민 크라메....미하엘
Benjamin Kramme....Michael
빈첸츠 키퍼....리코
Vinzenz Kiefer....Rico

루시와 칼라

시작은 좋았죠. 칼라는 두둑한 현금을 가방 안에 넣고 프랑스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한 독일을 떠나 리옹의 패션 학교에 입학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인 겁니다. 아,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죠. 기차가 낯선 도시에 잠시 정차해 있는 동안 칼라는 그만 전재산이 든 현금을 강탈당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으니, 그 현금은 주정뱅이 아빠한테서 몰래 훔친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어떻게 하나요? 그 도시에 머물면서 잃어버린 만큼의 돈을 다시 벌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있나요.

하지만 이게 끝일까요? 아뇨, 첫날 밤을 길거리에서 보내지 않으려고 동네 두목 리코에게 몸을 허락한 칼라는 그날 밤 한 번의 경험으로 임신을 했음을 알게 됩니다. 돈은 그럭저럭 모았지만 계획은 다시 정지. 다행히도 같은 일터에서 만난 친구 루시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칼라 대신 루시가 대신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루시에게 딸을 준다는 거죠. 그럼 루시는 아기를 가지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칼라는 홀가분하게 리옹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일까요? 아뇨... 음, 여기서부터는 이야기를 너무 노출시키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상황은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칼라와 루시의 계획은 결코 그들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계속 자잘한 실수를 저지르고, 주변 사람들은 계속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며, 그들 자신의 입장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루시도 자신이 그렇게 칼라를 좋아하게 될 줄 몰랐을 거고, 칼라 역시 아기에 대한 애착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을 테니까요. 다 그런 거죠.

[세상의 끝에서]는 빈곤에 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빈곤은 복지국가의 빈곤이죠. 이들은 굶어죽거나 길가에 버려질 위험은 없습니다. 국가에서 거기까지 가기 전에 도와주거든요. 그 도움을 조금 더 영리하게 이용한다면 그들은 나쁘지 않은 아파트에 들어가 그럭저럭 먹고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즉시 그들의 삶이 장미빛으로 물들라는 법은 없습니다. 경제적 문제만이 그들이 겪는 유일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죠. 특히 여러분이 가정폭력으로부터 달아났다가 덜컥 임신해버린 10대 소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소녀가 접하게 될 거의 모든 문제점들을 하나씩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고로 이 영화는 유익한 교훈담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중 가장 중요한 교훈들은 상식적인 것입니다만. (1) 열차 여행 때는 짐 관리를 철저하게 할 것! (2) 하룻밤 재워준다고 생전 첨 보는 남자와 섹스하지 말 것. (3) 정 그럴 거라면 제발 피임을 할 것!

물론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당장이라도 나라를 떠나 패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예쁘장한 이방인과 평생 동안 동네에 눌러앉아 살았고 앞으로도 동네를 떠날 생각이 없는 그렇게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동네 처자의 로맨스지요. 이들의 관계는 사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간단히 요약했던 캐릭터 설명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변화해가는 걸 보는 건 재미있습니다. (09/04/16)

DJUNA

기타등등

루시를 연기한 마리-루이즈 슈람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모르는 작품에만 나왔더군요. 아마 할리우드 조연 배우들 중에 비슷한 얼굴이 있나봐요. 분명 그 비슷한 얼굴을 어디서 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