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명세

주연
박중훈....우형사
안성기....장성민
장동건....김형사
최지우....김주연
권용운....가물치
박상면....짱구
안재모....영배

1.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기묘한 혼합물입니다. 이명세의 지극히 개인적인 스타일과 맥도널드처럼 몰개성적인 액션 영화 장르라는 두 이질적인 요소가 멋대로 뒤섞여 있으니까요.

그 결합은 성공적이었을까요? 글쎄요.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의 영화나 일반 '한국식 액션 영화'한테서 우리가 막연히 기대했던 그 어떤 것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완성도가 어떻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공인 거죠.

2.

한가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대단한 구경거리입니다. 이명세의 스타일 과잉은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심각하고 그것들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는 모든 걸 다 합니다. 어떤 때는 구식 무성 영화식 슬랩스틱으로 나가고, 어떤 때는 똥폼을 잔뜩 잡은 주먹 영화로 꺾어지며, 어떤 때는 왕가위식 스텝 프린팅으로 튀다가, 또 어떤 때는 태평스러워 보일 정도로 뻔뻔스럽게 일본식 애니메이션의 트릭을 실사 화면에 쏟아붓기도 합니다.

수십 개의 영화가 교차하는 것 같은 이러한 화면 속에서도 영화는 나름대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모방과 인용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이명세의 필터를 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트릭들은 상당히 진실되기도 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수많은 트릭들은 그냥 겉멋이 아닙니다. 성공했건 실패했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형사와 짱구의 결투를 보죠. 이들이 애들처럼 툭탁툭탁 싸우는 모습은 정말 우습지만, 사실 진짜 싸움도 그에 가까울 겁니다. 여기에 첨가된 탱고 음악과 슬랩스틱 효과는 웃음만을 노린 의미없는 효과는 아닙니다. 실제로 우스꽝스러운 대상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인 거죠.

사실 이 영화에서 이명세의 스타일은 리얼리즘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트릭들은 대상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보다 깊이 있게 묘사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죠. 이명세 특유의 '정서적 시공간'과 현장감 넘치는 각본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MTV식 비주얼을 남발하는 감독들보다 훨씬 그 세계에 가깝게 접근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적 액션 영화들' 중 x같은 형사 생활을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었습니까?

3.

이명세가 정말 완벽주의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희는 그의 영화에서 '스타일리스트'라는 사람들한테서 기대하는 '완벽성'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는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모자라는 기술이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게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투박한 느낌은 나름대로 그의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다 기술 지원이 뛰어나고 돈도 따라주는 헐리웃 같은 동네에서 영화를 만들었어도 이런 스타일이 나왔을까요? 흠...

하여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완벽하거나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기에는 너무나 자주 휘청거리며 구멍도 많습니다. 이명세가 사용한 비주얼 트릭의 남발은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중 상당수는 없는 편이 작품 완성도를 위해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저희들 생각엔 칭찬받는 '40계단 살인사건' 장면도 좀 더 절제하는 편이 나았을 거 같아요.

비주얼을 위해 스토리를 지나치게 무시한 것도 거슬립니다. 꼭 영화가 '이야기'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그는 종종 시각적 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필수적인 설명까지도 무시해버립니다. 아주 간단한 스토리인데도 불구하고 영화가 구름처럼 형체가 잡혀져 있지 않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이게 편집의 문제인지 감독의 예술적 통제력의 문제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양쪽 다일지도 모르겠군요.

4.

박중훈이 이처럼 어울리는 역을 맡은 적은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힘들 겁니다. 그의 장기인 코미디 연기와 드라마가 너무나 그럴싸하게 얽혀 있고 종종 튀어나오는 오버 액팅도 그럴싸하게 제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우형사라는 캐릭터에 거의 완벽하게 봉사하고 있어요.

안성기는 그보다 덜 인상적인데, 그건 순전히 나오는 신의 수가 적어서일 겁니다. 그의 존재감은 장성민이라는 말없는 남자를 그만큼 강하게 화면에 띄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에 비해 장동건과 최지우는 지나치게 충무로 냄새가 나고 평이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사실 이것도 아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현장감을 중시하는 영화라고 해도 관객과 통로가 되는 캐릭터들이 한 둘 쯤 필요하고 이 둘은 대충 그 통로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은 스타들 사이에서 빈칸을 채워주고 현장감을 살려주는 수많은 조역, 단역들입니다. 종종 단역들에서 허물어지고 마는 우리네 영화들을 생각하면 이건 큰 장점이지요. (99/08/18)

D&P

기타등등

1. 요새 올라가는 글들로 다들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한동안 극장 출입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더운 날씨에 약한데 요샌 유달리 더웠잖아요? 그런데 하필 맘잡고 극장 외출을 한 날이 더위 신기록을 세운 날이라니... 흑.

2. 제발 극장 안에서는 핸드폰을 꺼놓읍시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네 번이나 뻔뻔스럽게 통화를 해대는 아저씨 때문에 정말 미칠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