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양 위에칭 Yang Yue-qing

누슈: 여성의 언어

종종 다큐멘터리는 소재의 힘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슈: 여성의 언어]도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냥 무시하기엔 소재가 너무나도 흥미롭지요.

뉘슈(女書)는 중국 남부 지방의 소수 민족 사이에서 발생한 독특한 문어 체계입니다. 난슈(男書)인 한문을 배우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만이 몰래 사용한 문자지요. 거의 아마존 전설처럼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요?

다시 생각해보면 우린 이런 여성들의 문자에 꽤 익숙합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지적했지만 지금 제가 쓰고 있는 한글이나 일본의 히라가나도 상당히 오랫동안 여성들의 문자 체계로 사용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뉘슈의 이야기는 훨씬 더 환상적입니다. 우리의 언문이나 히라가나와는 달리 뉘슈는 철저하게 여성들만의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1960년대에 누슈가 재발견되었을 때 중국 당국은 뉘슈를 외국의 첩보암호로 오인하기도 했다는군요.

[누슈: 여성의 언어]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입니다. 1시간이 버거울 지경이죠. 영화는 누슈의 기원과 재발견의 과거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뉘슈의 생존자를 찾아나서는 다큐멘터리 팀은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날이 서 있는 중국 시골의 성차별적인 세계에서 시달리는 여성들의 현실과 마주칩니다. 그들과 마주치면서 뉘슈의 이야기는 슬플 정도로 현대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 이야기가 한족의 지배를 받는 소수 민족 야오족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정말 러닝타임이 너무 짧습니다.

영화 보기 전에 제가 기대했던 것은 보다 학술적인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면이 조금 아쉽군요. 전 여전히 뉘슈의 언어학적인 측면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끔찍한 남성중심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려고 했던 수많은 야오족 여성들이 일구어낸 성과들을 온 몸으로 접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감흥은 같은 러닝타임의 학술적인 다큐멘터리가 줄 수 있는 지적 만족보다 훨씬 강합니다. (01/04/18)

DJUNA

기타등등

1. 전족이 사람 발을 얼마나 끔찍하게 비틀었는지 이 영화를 보고 알았습니다. :-(

2. 양 위에칭의 홈페이지에 한 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