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Brian De Palma

주연
클리프 로버트슨....마이클 코틀랜드
Cliff Robertson....Michael Courtland
쥬느비에브 뷔졸드....엘리자베스 코틀랜드/산드라 포르티나리
Geneviève Bujold....Elizabeth Courtland/Sandra Portinari
존 리스고우....로버트 라살
John Lithgow....Robert Lasalle
실비아 쿰바 윌리엄즈....하녀
Sylvia Kuumba Williams....Maid
완다 블랙먼....에이미 코틀랜드
Wanda Blackman....Amy Courtland
스토커 퐁텔리유....엘먼 박사
Stocker Fontelieu....Dr. Ellman
스탠리 J. 리예스.....브리 경위
Stanley J. Reyes....Inspector Brie
넬라 시모치니 바르비에리....포르티나리 부인
Nella Simoncini Barbieri....Mrs. Portinari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이클과 산드라

내용만 따진다면 [옵세션]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히치콕 영화들' 중 가장 뻔뻔스럽습니다. [드레스드 투 킬]이나 [시스터즈]는 그래도 히치콕의 여러 영화에서 개별 요소들을 뽑아와 조합이라도 한 작품들이지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히치콕 영화 하나를 통째로 훔쳐와 표절했거든요. 그 히치콕 영화는 [현기증]입니다.

얼마나 닮았는지 한 번 줄거리를 들어보세요. 영화는 [현기증]이 개봉된 바로 다음 해인 1959년에 시작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마이클 코틀랜드에게 끔찍한 일이 닥칩니다. 아내 엘리자베스와 딸 에이미가 유괴당한 것이죠. 그는 경찰의 권고대로 가방에 몸값 대신 종이 조각과 추적장치를 달아 범인에게 넘겨주지만 일은 제대로 되지 않아 구출 작전 도중 아내와 딸은 죽고 맙니다.

세월은 흘러 1975년이 됩니다. 동업자인 라살과 함께 피렌체로 출장온 코틀랜드는, 그가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났던 성당에서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산드라라는 여자를 만납니다. 산드라에게 정신없이 집착하게된 그는 결국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와 결혼준비까지 하죠. 그러나 결혼식 바로 전날, 산드라는 16년전 유괴범들이 남긴 협박 편지의 복사본을 침실에 남기고 실종됩니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유사점이 보이죠? 한 여자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죄책감을 느끼는 남자가 있고, 그 남자에게 그 여자와 똑같은 외모의 여자가 나타나 그에게 두번째 기회를 약속합니다. 물론 이 신비스러운 사건 뒤에는 그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조직적이고 음흉한 범죄가 도사리고 있고요. 드 팔마와 각본가 폴 슈레이더는 자기들만의 반전을 준비해두고 있지만, 그 역시 [현기증]을 먼저 본 관객들에게는 쉽게 보이는 속임수입니다. 레너드 말틴이 '[현기증]을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들이나 재미있어할 영화'라고 했던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레너드 말틴이 놓친 게 있습니다. [옵세션]은 보기만큼 단순한 흉내는 아니에요. 기본 스토리와 망집의 주제는 같지만 [현기증]과 [옵세션]은 결국 다른 이야기를 하는 다른 영화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폴 슈레이더의 터치입니다. 클래식 할리우드 배우처럼 점잖은 척 하는 마이클은 따지고 보면 어딘지 모르게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이나 [하드코어]의 제이크 반돈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딸, 나이 든 남자와 젊은 여자의 비틀린 관계를 파고들 때는요.

[옵세션]은 [현기증]처럼 네크로필리아로 시작하지만 그 위에 다른 요소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렐라]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가 죽은 아내의 환생이라고 생각한 여자는 알고 봤더니 죽은 줄만 알았던 그의 딸이었으니까요 (눈치 못챘다고 우기지 마세요.) 결혼까지 할 뻔했던 이 부녀의 열정적인 애증 관계에는 [현기증]과는 다른 종류의 불쾌한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거의 그리스 비극처럼 보이는군요.

드 팔마는 이런 불쾌한 이야기를 한없이 로맨틱한 이미지로 치장합니다. 영화 전체가 디퓨전 디스크를 사용해서 꿈결같이 뿌옇죠. 이런 로맨틱한 분위기의 묘사 역시 [현기증]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현기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몽환적인 백일몽과 초현실적인 악몽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현기증]과는 달리, 드 팔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맨틱한 분위기로 일관하면서 후반부에 폭로되는 냉정한 진실에 아이러니컬한 잔인함을 부여합니다. 특히 총을 들고 뛰어오는 코틀랜드에게 '아빠'를 외쳐대며 달려가는 산드라의 모습을 보세요.

[시스터즈]나 [드레스드 투 킬]처럼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이 영화 역시 드 팔마 특유의 화려한 기교들로 가득합니다. 1959년에서 1975년으로 넘어가는 유려한 360도 팬은 그중 대표적인 장면이죠. 그는 마치 장난감을 새로 받은 어린 아이처럼 기쁨에 가득 차서 처음 쓰는 와이드스크린의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결과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 때문에 풀스크린 비디오로는 이 작품의 진짜 분위기를 잡아낼 수 없기도 하지만요.

물론 히치콕 훔치기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현기증]이지만, 다른 영화의 조각들도 조금씩 숨어 있어요. 살인 흉기로 가위가 사용되는 부분은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가져온 것이겠지요. 산드라가 열쇠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에선 [마니]의 영향이 보이고요.

히치콕 훔치기의 절정은 역시 버나드 허먼입니다. [옵세션]은 버나드 허먼의 마지막 걸작 중 하나입니다. 그가 작곡한 마지막 히치콕 영화 음악일지도 모르죠.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현기증 2]라는 별명을 붙이며 놀려댈지 모르지만, 이 노인네의 마지막 힘은 여전히 강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우들은... 클리프 로버트슨은 적절히 캐스팅되었습니다. 히치콕 남자 배우들과 같은 카리스마나 개성은 부족하지만 그 덕택에 더욱 관객들을 쉽게 끌어들이는 것인지도 모르죠. 쥬느비에브 뷔졸드 역시 히치콕 여자 배우들의 화려함은 없지만 원래 그런 것보다는 아직 덜 성숙한 아이다운 매력이 더 강조되는 캐릭터이므로 역에는 잘 어울립니다. 전 사실 뷔졸드하면 [천일의 앤]같은 영화보다는 [옵세션]을 더 먼저 기억한답니다. 훨씬 좋은 연기였다고 생각해요. 요새 관객들에게는 존 리스고우의 얼굴이 가장 먼저 들어올 겁니다. 76년 영화니 그가 아직 파릿파릿한 젊은이였을 때였어요. 겉늙어보이는 얼굴 때문에 중년 남자를 연기하고 있지만요.

[옵세션]은 [시스터즈]나 [드레스드 투 킬]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는 아닙니다. 같은 해에 나온 그의 히트작인 [캐리]의 명성에 눌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독립된 영화로 보기엔 지나치게 [현기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서일 가능성이 더 커요. 지금까지 두 영화의 차이점을 열거하고 이 영화 고유의 매력에 대해 떠든 저 자신도 이 작품만을 따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하긴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겠지만요. (01/07/16)

DJUNA

기타등등

리스고우가 연기한 라살은 아마 요새 리스고우와 나이가 비슷할 겁니다. 별로 달라지지도 않았어요. 단 한가지만 빼곤요. 중년의 라살은 중년의 리스고우와는 달리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