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크 저지 Mike Judge

주연
론 리빙스턴....피터 기븐즈
Ron Livingston....Peter Gibbons
제니퍼 애니스턴....조아나
Jennifer Aniston....Joanna
에이자이 나이두....사미르
Ajay Naidu....Samir
데이빗 허먼....마이클 볼튼
David Herman....Michael Bolton
게리 콜....빌 럼버그
Gary Cole....Bill Lumbergh
스티븐 루트....밀튼 워덤즈
Stephen Root....Milton Waddams
리처드 릴....톰 스마이코우스키
Richard Riehle....Tom Smykowski
알렉산드라 웬트워스....앤
Alexandra Wentworth....Anne
조 베이....돔 포트우드
Joe Bays....Dom Portwood
존 C. 맥긴리....밥 슬라이델
John C. McGinley....Bob Slydell

[비비스와 벗헤드]의 마이크 저지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를 위해 [밀튼]이라는 제목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어준 적 있습니다. 내용은 저지 특유의 성의 없는 터치로 그려진 밀튼이라는 직장인이 책상에 앉아 웅얼거리는 게 전부였죠. 그걸 보면서 뭐랄까...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저한테는 우울하고 슬픈 시리즈였습니다.

[비비스와 벗헤드] 영화판의 성공 이후, 저지는 [밀튼] 역시 영화관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실사 영화였어요. [뛰는 백수, 나는 건달]이 바로 그 작품이었지요.

이 영화에서도 밀튼은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끝도 없이 웅얼거립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긴 그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대로 된 액션도 줄 수 없고 대사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드니까요. 원작에서처럼 잠깐씩 등장하는 것 정도야 괜찮지만 1시간 반 짜리 실사 영화를 몽땅 내주는 건 좀 곤란하죠.

밀튼을 대신해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피터 기븐즈입니다. 밀튼과 같은 회사에 일하는 동료지요. 그 회사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일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며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밀튼보다는 훨씬 정상적인 인물이어서 감정이입이 아주 쉽습니다.

지옥 같은 피터의 인생은 약혼녀의 최면술사네 집에서 최면 요법을 받던 날 극적으로 변합니다. 최면 요법 도중에 최면술사가 죽어버리고 그 부작용 때문인지, 그 날부터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죠. 약혼녀와 헤어지고, 상사 말을 몽땅 위반하고, 큐비클을 부수고, 컨설턴트들과 말장난을 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늘 마음에 두던 식당 웨이트리스 조아나에게 데이트 신청도 하고요. 그의 이런 태평스러운 반란은 덜 떨어진 컨설턴트들을 속여넘겨, 그는 승진까지 합니다. 물론 이런 운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지만요.

영화는 피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해서 두 가지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미국 화이트 칼라 계급의 갑갑한 삶을 극도로 과장해서 만들어내는 웃음과, 그 삶을 때려부수며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해소성 웃음이지요.

두 가지 모두 요샌 아주 익숙합니다. 모두 [딜버트]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저지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쓰면서 [딜버트]를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터는 저지 버전 딜버트인 셈이지요. 더 여자 운이 좋은 게 다를 뿐이지만. 하여간 이 영화는 [밀튼] 오리지널 보다 [딜버트]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 때문에 저지 특유의 무성의한 무정부주의는 다소 사라졌습니다. [뛰는 백수, 나는 건달]의 유머는 엄격하게 짜여진, 조직적이고 냉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지는 꽤 잘해냈습니다. 나중에 실사 영화 감독으로 업종 전환해도 잘 살아남겠어요.

그러나 이 영화는 오리지널 원작이나 [비비스와 벗헤드]가 가진 저지 고유의 느낌은 없습니다. 그들보다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는 하지만, 조금 힘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피터의 선택은 지나칠 정도로 건전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지요.

그래도 곳곳에 남아있는 밀튼의 존재는 이런 말끔함에 저지식 코미디를 가미해 영화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주연에 될 수는 없었을지 몰라도 꽤 좋은 양념은 되었던 거죠. 하긴 밀튼 자체도 대단한 인물이죠. 정리 해고된 지 5년이나 되었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계속 회사에 눌러 앉아 있는 이 남자는 정말 인간 소외의 물화처럼 보입니다. 돗수 높은 안경 속에 숨어 끊임없이 '회사를 불질러 버릴까보다'를 웅얼거리는 스티븐 루트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고요. 오히려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더 강렬해요.

'Work Sucks.' 이 영화의 태그 라인이죠. 아마 이런 영화들 때문에 제가 이런 종류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다들 어떻게 버티는 걸까요. 아마 그런 끔찍한 것도 없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겠죠. 그라우초 막스의 '맛없는 식당' 농담이 여기서도 통하지 않을까요? 사실 영화에서도 그의 농담이 살짝 변주되어 사용되고 있답니다. "평생 이렇게 살면 어쩌지?" "좋은 거지. 평생 직장이 보장되었다는 뜻이니까." (00/03/01)

DJUNA

기타등등

제니퍼 애니스턴이 웨이트리스 조아나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강한 역은 아니군요. 오히려 너무 착하고 순해보이기만 해서 이상해보였습니다. 이 친구는 아직 [프렌즈] 밖에선 맥을 못추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