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근식

주연
이병헌....윤석영
수애....서정인
오달수....남균수
유해진....김 PD
정석용....김씨
이혜은....엘레나
이세은....수진

정인과 석영

[그 해 여름]의 시대배경은 1969년. 미국에서는 사람을 달에 보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선개헌 때문에 난리가 났던 때죠.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모두 나옵니다.

물론 달착륙과 삼선개헌이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는 아니에요. [그 해 여름]은 전통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과 시골 처녀가 연애하는 이야기죠. 역시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맺어지지 않습니다. 이건 스포일러가 아니에요. 액자식 구성부터 노골적인 걸요. 영화는 은퇴한 대학교수인 남자 주인공 석영이 제자가 작가로 일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옛 사랑인 정인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나중에 둘이 재회하냐고요? 그거야 말로 스포일러군요.

조근식의 전작 [품행 제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 해 여름]도 과거의 시공간 묘사 자체를 재미의 일부로 삼고 있습니다. 하긴 영화가 비싼 돈을 들여 과거의 시대 배경을 써먹는 것도 남는 게 있어서죠. 현대를 무대로 한 영화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면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막 전기가 들어온 동네에서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달착륙 광경을 본다면 그건 사정이 다르죠. 지금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텔레비전 보는 행위가 이 시공간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 해 여름]에서 이런 과거의 조각들은 향수와 호기심을 적절하게 자극하는 배경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드라마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은근히 [시네마 천국]과 닮기도 했습니다. 영화광 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두 회상 형식을 취하고 있고 몇 십 년 전의 시골이 무대죠. 심지어 주인공에 의해 연출된 '영화 마술'과 화재 사건이 이어지는 구성도 비슷합니다. 우연일까요?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영화의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도막에서 남자 주인공 석영은 농활 때문에 시골에 왔다가 동네 도서관 사서인 정인과 아기자기한 연애를 합니다. 두 번째 도막에서 영화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이들을 험악한 역사의 회오리에 집어던지는데, 도입부부터 삼선개헌 이야기가 나오고 여자주인공은 '빨갱이'의 딸이니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야기가 먹히냐고요? 글쎄요. 이 영화의 몇몇 설정들은 지나치게 편리한 구석이 있고, 캐릭터들도 지나치게 깔끔하게 재단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거칠고 지저분한 느낌을 살리기엔 모든 게 너무 착하고 예쁘죠. 이들을 옭아매는 역사의 물결도 은근히 교과서에서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는 먹힙니다. 이야기와 설정은 평범하고 조금은 짜증이 날 정도로 전통적이지만 (남자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 이야기는 좀 그만 보고 싶더군요) 캐릭터와 디테일이 살아 있고 은근히 유머도 풍부하기 때문이죠. 전반부가 석영과 정인의 로맨스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의 [로미오와 줄리엣] 설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아마 주연배우 이병헌과 수애일 겁니다. 이들이 그만큼 영화에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 해 여름]은 굉장히 따분한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06/11/22)

DJUNA

기타등등

현재 시점의 이야기에서 방송작가로 나오는 이세은은 [품행제로]의 임은경과 거의 똑같은 외모로 나오더군요. 커다란 눈을 뿔테안경으로 가린 어리버리한 미인으로요. 감독의 취향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