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아녜스 바르다 Agnès Varda

주연
발레리 마레스.....폴린
Valérie Mairesse....Pauline
테레즈 리오타르....수잔
Thérèse Liotard....Suzanne
알리 라피....다리우스
Ali Raffi....Darius
로베르 다디에....제롬
Robert Dadiès....Jerome
프랑스와 베르테메....프랑스와
François Wertheimer....François

1972년

네, 저랑 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 역시 바르다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라는 영화의 제목을 FM 영화음악실을 통해 접했답니다. 당시 영화음악실에서 끝도 없이 자주 틀었던 그 곡의 제목이 뭐였던가요. [물 위의 암스테르담]이었나?

그 뒤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6,70년대를 살아가는 두 여자들의 기나긴 우정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은 영화음악실 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바르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 이들의 삶이 당시 페미니즘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꽤 흥미로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르다 영화들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는 것도 괜찮은 정보였어요.

그러나 저번 일요일에 이 영화를 접했는데... :-) 이처럼 노골적인 영화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기대했던 건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줄리아]와 비슷한 종류의 작품이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줄리아] 풍의 영화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스토리를 이야기해드릴까요? 가수 지망생인 고등학생 폴린은 우연히 사진관을 지나치다 예전에 알고 지냈던 수잔의 사진을 발견하고, 둘은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수잔의 애인인 제롬이 자살하고 제롬의 아내가 집을 빼앗자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죠. 10여년 뒤,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수잔과 가수가 된 폴린은 낙태 권리 시위장에서 다시 만나는데, 그 뒤로 영화는 이 둘의 삶을 쫓아갑니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바르다가 이 둘을 추적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바르다는 폴린과 수잔이라는 캐릭터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아 숨쉬는 인간이 아니라 6,70년대 페미니스트들을 대표하는 마네킹들입니다. 이들이 겪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도 진짜 살아 숨쉬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종의 테스트 같습니다. '자, 폴린이 이란 남자랑 결혼해서 이란으로 갔군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수잔이 사귀는 남자가 유부남이군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기타등등 기타등등... 영화가 끝날 무렵에 수잔과 폴린이 재회를 하는 장면은 마치 페미니스트 자격 학교 졸업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답니다. 종종 삽입되는 폴린의 노래들도 지나치게 직설적인 메시지 때문에 몰입이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70년대 영화라는 이유로 이 영화의 단순무식함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아까 제가 언급한 [줄리아]나 [노마 레이] 같은 영화들은 모두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나와 비슷한 이슈를 다루었던 작품들이었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영화가 심각하게 여기는 이슈들이 벌써 낡아버렸기 때문일까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르다가 재능없는 감독이어서? 그것도 아닙니다. 바르다는 이 영화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좋은 영화들을 만들었고 그들 중 많은 영화들은 지금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만 이처럼 낡아보이는 것일까요?

아마도 바르다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적 재능을 모조리 희생할만큼 이 주제에 몰입되었었는지도 모릅니다. 의무감 때문에 예술가가 잠시 자기 재능을 접고 운동가가 된 것이지요. 문제는 바르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한 운동가가 아니었고 택한 장르도 그처럼 노골적인 메시지를 견뎌낼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겠지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건전하고 행복한 영화지요. 전 종종 이 영화의 낙천적인 비전을 보며 행복해했고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품을 '훌륭한 영화'라고 하지는 못하겠어요. '훌륭한 선전물'로도 모자랍니다. 요새 관객들에게는 페미니스트들을 희화화한 코미디로 보일 정도니까요. (01/04/24)

DJUNA

기타등등

과연 영화음악실의 PD들이, [물 위의 암스테르담]이 낙태 수술을 받으러 네덜란드로 가는 여자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 틀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