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지영

주연
박지영....연희
김예리....원우
김영재....선재
홍종현....준서

원우와 연희

기자간담회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 나오는 기면증 설정은 감독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제작사측 아이디어였다는군요. 특정 불치병을 소재로 잡아 패셔너블한 기성품을 만드는, 좀 속이 보이는 기획이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병을 앓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면증은 확실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병입니다. [잠자는 미녀] 잖아요. 그 때문인지 19세기 폐렴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지요. 가까운 예로 [4인용 식탁]에서 전지현 캐릭터가 기면증 환자였지요?

다행히도 영화는 기면증을 로맨틱한 장치로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 증거로 이 영화는 기면증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지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중증 기면증 환자가 얼마나 위태롭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코미디도 제대로 볼 수 없더군요. 웃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할 수도 있어요. 물론 자전거 타는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잠이 들면 어떻게 되겠어요.

캐릭터와 이야기는 [아이엔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은 불치병에 걸린 소녀입니다. 그 소녀는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요. 아빠는 없어요. 편리하게도 오래 전에 그리움만 남기고 죽어버렸죠. 덕택에 두 주인공들은 아빠의 방해 없이 일대일의 드라마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습니다. 단지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의 경우에는 외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여자3대가 형성되지만 그래도 기본 구조가 심하게 바뀌는 건 아니에요.

불치병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병은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기면증은 주인공 원우 주변에 과보호의 버블을 만듭니다. 물론 그 버블의 존재는 지극히 논리적입니다. 그렇게 주의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젊은이들이란 세상과 부딪히고 상처를 입으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원우에게도 그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버블의 존재 이유가 격파되는 건 아니니 갈등의 여지는 남죠. 이것이 영화에 드라마를 심어주는 건 당연하고요.

영화는 러브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원우는 같은 반 남자아이 준서와 친구가 되고 점토 공예 강사인 엄마 원희는 역시 옆반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선재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지요. 이들의 이야기 역시 원우와 연희의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전 그래도 이들 이야기가 좀 그랬습니다. 우선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대상화된 남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의 남자들은 생기가 없고 평면적이며 하는 행동 역시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같이 있기 편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너무 편해서 그냥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죠. 이들의 비중을 줄이고 모녀간의 드라마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녀로 나오는 박지영과 김예리의 콤비 플레이는 좋습니다. 전 김예리쪽에 더 주목하게 되더군요. 일단 이 배우는 외모부터가 한국 연예인의 전형성에서 거의 완벽하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원우라는 아이를 주변에 흔히 있는 보통 아이로 받아들이기가 더 쉽고, 그 결과 기면증이라는 드문 불치병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연기가 좋아요. 자연스러우면서도 소위 '생활 연기' 안에 갇혀 드라마의 흐름을 소홀히 하지도 않고요. 사랑스러운 배우예요. (09/05/08)

DJUNA

기타등등

원우의 외할머니로 나오는 배우는 감독의 어머니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