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주연
크리스티나 마르실락....베티
Cristina Marsillach....Betty
이안 찰슨....마르코
Ian Charleson....Marco
우르바노 바르베리니....알란 산티니 경위
Urbano Barberini....Inspector Alan Santini
다리아 니콜로디....미라
Daria Nicolodi....Mira
코랄리나 카탈디 타소니....줄리아
Coralina Cataldi Tassoni....Giulia
안토넬라 비탈레....마리온
Antonella Vitale....Marion
윌리엄 맥나마라....우르바노
William McNamara....Urbano
바르바라 쿠피스티....시뇨라 알베르티니
Barbara Cupisti....Signora Albertini
안토니노 유오리오....바디니
Antonino Iuorio....Baddini
카롤라 스타냐로....알마의 어머니
Carola Stagnaro....Alma's Mother
프란체스카 카솔라....알마
Francesca Cassola....Alma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티

[오페라]는 팬들과 비평가들이 모두가 인정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마지막 걸작입니다. 물론 이 걸작이라는 표현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르젠토는 일반적인 의미의 걸작을 만든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오페라]가 80년대에 들어와 다소 덜컹거렸던 그의 전성기를 끝맺는 마지막 영화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르젠토는 그 이후 이만한 질적 성취를 이룩한 적이 없습니다. 딸 아시아 아르젠토를 주연으로 내세운 [스탕달 신드롬]이나 [오페라의 유령]은 심심한 영화였고 왕년의 힘을 되찾았다는 [슬립리스]도 이전만은 못했죠. 소문을 들어보면 최근작 [카드 플레이어]는 더욱 시시한 모양이고요.

[오페라]의 이야기는... 물론 오페라에 대한 것입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로 출연하려던 프리마돈나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풋내기 성악가 베티가 대역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베티는 대성공을 거두지만 그날 수수께끼의 살인마에 의해 극장직원이 살해됩니다. 그날 밤 베티를 찾아온 살인마는 베티를 결박하고 그 앞에서 남자친구를 살해합니다.

[오페라]의 설정과 소재는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현란한 스타일로 유명한 이탈리아 호러영화 감독이 베르디의 오페라에 대한 호러영화를 만드는 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죠. 그 오페라가 극장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작품으로 알려진 [맥베스]라면 더욱 그렇고요. 그리고 이런 영화에서 프리마돈나를 밀어낸 풋내기 소프라노 가수와 그 뒤를 따라다니는 음침한 스토커를 빼먹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오페라]의 줄거리는 아르젠토가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에 자기 스타일의 살육을 덧붙이면 되었던 거예요. 그 때문인지 [오페라]의 이야기는 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각본이 덜컹거리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주인공 베티는 호러 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바보짓들을 모두 실험삼아 해보는 것 같습니다. 베티의 옆집 소녀 알마처럼 흥미로울 수도 있었던 인물들도 안이한 스토리 속에서 그냥 낭비되고요.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지는 두번째 오페라 공연 장면은 강렬하지만 이치를 따진다면 세상에 그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는 없죠. 게다가 영화의 [사운드 오브 뮤직] 결말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거죠?

각본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도 아닙니다. 공포 장면들은 기가 막히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은 그만큼 좋지 못해요. 각 장면들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죠. 베르디의 음악은 근사한 살인 음악이 되어주지만 클라우디오 시모네티에서부터 브라이언 이노에 이르는 절충적인 음악 선정은 난잡하다는 느낌만 줍니다. 시시한 영어 더빙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이 덜컹거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는 먹힙니다. 아니, 그 덜컹거리는 스토리 때문에 먹히는 부분도 있어요. 이야기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기 때문에 오히려 빠져나갈 수 없는 악몽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악명높은 [사운드 오브 뮤직] 결말도 이런 비논리적인 틀 속에서 넣고 보면 거의 용납될 정도입니다.

오페라 극장이라는 무대가 [서스피리아]의 기숙학교만큼 멋진 호러영화용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구세대의 화려한 장식들로 덮인 관객석과 극도로 표현적인 현대적 무대를 배경으로 미친 까마귀들이 복수의 여신처럼 날아다니는 거대한 빈 공간이 당연한 현실의 일부로 용납되고 있으니 말이에요.

아르젠토는 마르코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오페라와 호러의 연관 관계를 분명히 합니다. 난도질 호러 영화 전문 감독이면서 [맥베스]의 연출자이기도 한 그가 아르젠토 자신의 반영이 아닐 수가 없지요. 처음부터 오페라 살인을 자기 작품처럼 즐기던 그는 두 번째 공연 때 오페라 뿐만 아니라 살인사건의 연출까지 맡게 됩니다. 공연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새장에서 탈출한 까마귀들이 살인마를 공격한다는 설정은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이 극단적인 비현실성은 오페라 풍의 호러 영화인 이 작품에 완벽하게 맞습니다.

아르젠토의 또다른 사적 농담은 그보다 더 사악한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이 영화에서 살인마는 베티를 노리는 대신 베티 주변 사람들을 노립니다. 대신 그는 베티에게 아주 악질적인 고문을 합니다. 바늘들을 촘촘하게 붙인 스카치 테이프를 베티의 눈 밑에 붙인 뒤 자기가 저지르는 살인을 지켜보게 하는 거죠. 눈을 감으면 눈까풀이 바늘에 찔리기 때문에 베티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뜬 채 그 끔찍한 광경들을 봐야 합니다. 호러영화라는 장르가 스크린 너머의 살인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가해지는 고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자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야비한 윙크라고 할 수 있지요.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들 사이에서 [오페라]는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그건 여러분이 아르젠토의 영화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전 비교적 좋게 보는 편입니다. 맘에 드는 아르젠토의 영화 두 편만 뽑아야 한다면, 전 별 고민없이 [서스피리아]와 [오페라]를 들겠어요. 그리고 스토리와 설정의 질만 따진다면, 좋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은 [서스피리아]보다 [오페라]가 훨씬 낫습니다. [오페라]는 아르젠토식 칼질을 빼고도 재미있는 몇 안되는 아르젠토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04/08/23)

DJUNA

기타등등

앵커베이의 DVD는 우수한 수준이지만, 이탈리아어 더빙이 없는 건 유감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리아들이 울려퍼지는 이런 영화에서는 이탈리아어 더빙이 꼭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