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두이간 John Duigan

주연
제시카 알바....클로이
Jessica Alba....Chloe
이안 글렌....스탠
Iain Glen....Stan
진 트리플혼....레이첼
Jeanne Tripplehorn....Rachel
유언 브렘너....고든
Ewen Bremner....Gordon
미샤 바튼....테레사
Mischa Barton....Theresa
케빈 와틀리....클라이브
Kevin Whately....Clive
올리버 밀번....토비
Oliver Milburn....Toby
에이미 필립스....미셀
Amy Phillips....Michelle
게리 러브....네드
Gary Love....Ned
데이빗 팜....제레미
David Fahm....Jeremy
피터-휴고 데일리....엘리스
Peter-Hugo Daly....Ellis
제임스 배넌....브라이언
James Bannon....Bryan
지나 벨먼....이브
Gina Bellman....Eve

클로이

[패러노이드]의 주인공 클로이는 런던에 사는 미국인 패션 모델입니다. 그것도 무척 피곤한 패션 모델이죠. 미국에서 막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시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는데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일과 툭하면 전화를 걸어대는 스토커 때문에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판입니다. 이런 통에 네드라는 남자가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클로이는 덜컥 승낙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클로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골의 조용한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클로이를 초대한 네드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그의 친구인 스탠과 고든에게는 불쾌한 비밀이 있었으니까요.

존 두이건의 [패러노이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패션 모델 클로이를 통해 대중 매체를 통해 배포되는 이미지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려 하죠. 클로이 주변의 남자들은 모두 클로이라는 자연인보다 사진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한 클로이의 이미지를 통해 그녀를 봅니다. 자연인이 제거된 그들의 관점은 쉽게 과격한 판타지로 이어지고 클로이에게는 곧 육체적/정신적 위협이 되지요.

그러나 이 메시지가 영화 속에 분명하게 살아있다고는 못하겠어요. 우선 그런 메시지를 제대로 살리기엔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지나치게 쾌락주의적입니다. 이 영화에 클로이의 누드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클로이가 살아있는 캐릭터보다는 아주 예쁘고 관능적인 물건 쯤으로 여겨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클로이 (그리고 클로이를 연기한 제시카 알바)는 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럴 정신이 없거든요. 영화 전체를 통해 클로이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거나, 몽롱한 정신으로 앉아 있거나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입니다. 덕택에 클로이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점은 노골적인 관음주의를 노출시키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클로이를 그렇게 본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드라마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이미지와 대립할 수 있는 자연인의 캐릭터도 그만큼 살아 있어야죠.

클로이의 납치범들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이안 글렌은 좋은 배우지만 그가 연기한 스탠은 흥미롭지 못한 악당입니다. 개성도 없고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클로이와 대단한 드라마를 만들어내지도 못하죠.

아무래도 주인공을 잘못 잡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클로이와 스탠 대신 주인공으로 삼았으면 훨씬 이야기가 재미있게 풀렸을 두 캐릭터들이 있거든요. 한 명은 스탠의 농아 딸인 테레사입니다. 농아라는 핸디캡, 집에 납치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설정, 지금까지 당연히 믿고 있던 부모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느끼는 감정의 동요는 분명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입니다. 테레사를 연기한 미샤 바튼(이 영화를 제가 본 것도 이 친구 때문입니다)도 충분히 그런 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고요. 다른 한 명은 클로이의 스토커인 클라이브입니다. 음탕한 스토커에서 주인공을 구출하는 영웅으로 탈바꿈하는 위치 전환은 흥미로운 아이러니와 모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를 연기한 케빈 와틀리도 좋은 배우고요.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안이한 기능적 도구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02/02/18)

DJUNA

기타등등

제시카 알바의 얌전한 미국식 영어가 중간에 들어서자 영국 배우들의 억양이 은근히 육식동물들처럼 사납게 느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