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세일즈 John Sayles

주연
메리 맥도넬....메이-앨리스 컬헤인
Mary McDonnell....May-Alice Culhane
알프레 우다드....샨텔
Alfre Woodard....Chantelle
데이빗 스트래테인....레니
David Strathairn....Rennie
안젤라 바셋....돈/론다
Angela Bassett....Dawn/Rhonda

1.

샨텔과 메이-앨리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소프 오페라 배우 메이-앨리스 컬헤인은 달아나듯 고향인 루이지애너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왔다고 해서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었죠. 끊임없이 간병인을 해치우며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 앞에 흑인 간호사 샨텔이 나타나고...

이쯤되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두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되풀이 된 내용이니까요. 고집 센 고용인과 그에 못지 않은 간병인이 티격태격하다가 서서히 서로를 받아들이는 거죠.

[패션 피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샨텔과 메이-앨리스는 티격태격해가면서 신뢰를 쌓아갑니다. 그게 이 영화의 등뼈예요. 존 세일즈는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야기를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공식화된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면서 클리셰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세일즈는 그런 일을 매끈하게 해낼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작가입니다.

이 영화가 진부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패션 피시]의 중심 주제는 '장애자의 재활'이나 '인간 승리'가 아닙니다. 딱 부러지는 두 캐릭터의 충돌이 진짜 중심이지요. 세일즈는 그의 앞에 놓인 감상주의와 메시지들을 걷어낸 뒤 이 영화를 놀랄만큼 순수한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이 순수함은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그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강한 정치적 성향의 집단물과의 차이가 너무나도 두드러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그가 이 영화 뒤에 만든 작품은 역시 너무나도 순수한 동화였던 [론 이니쉬의 비밀]가 아니었나요?

아무래도 존 세일즈는 이 두 영화를 통해 그 동안 그가 분출하지 못했던 예술가로서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정치적 성향의 영화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2.

[패션 피시]의 이야기는 꽉 짜여진 헐리웃 멜로드라마의 구성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리얼리즘이 공식을 앞섭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두 주인공들이 모두 남은 게 자존심밖에 없는 목뼈 경직증 환자라 눈물과 포옹이 뒤섞인 '감동적인 클라이맥스' 따위는 싹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영화는 더 재미있어집니다. 메이-앨리스와 샨텔의 충돌은 캐릭터의 사실성 때문에 훨씬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부여받습니다. 구성이 반쯤 열려있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보조 캐릭터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삽입됩니다. 그리고 원래 고정된 공식을 따른 기성품보다야 진짜 같은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한 법이지요.

세일즈의 '좌파 백인 지식인' 특유의 균형 감각이 영화에 약간 뻣뻣함을 부여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요. 사실 슈가와 샨텔의 관계는 없어도 상관없었고 샨텔의 성격 묘사에도 의식적으로 흑인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건 저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

3.

종종 세일즈의 무미건조한 스타일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당연히 배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어야지요.

메리 맥도넬과 알프레 우다드는 둘 다 최고의 명연을 보여주며 둘 사이의 화학 반응도 불꽃 같습니다. 그해 나온 영화들 중 그네들만큼 불꽃 튀기는 커플은 없었습니다. 우다드가 당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맥도넬은 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맥도넬과 우다드 이외에도, 영화는 흥미진진한 조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메이-앨리스의 옛 남자 친구로 나오는 데이빗 스트래테인도 잘하지만 거의 단역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도 멋진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특히 맥스 역의 윌 마호니는 일품입니다. (99/03/30)

DJUNA

기타등등

존 세일즈가 소프 오페라 의사로 잠시 카메오 출연한다는군요. 한번 영화 속의 텔레비전 화면을 체크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