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오우삼 John Woo

주연
벤 애플렉....마이클 제닝즈
Ben Affleck....Michael Jennings
아론 에크하트....레스릭
Aaron Eckhart....Rethrick
우마 서먼....레이첼 포터
Uma Thurman....Rachel Porter
폴 자마티....쇼티
Paul Giamatti....Shorty
콤 피어....울프
Colm Feore....Wolfe
조 모튼....도지 요원
Joe Morton....Agent Dodge
마이클 C. 홀....클라인 요원
Michael C. Hall....Agent Klein

레이첼과 마이클

[페이첵]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허접한 아류작처럼 보이는 영화입니다. 오우삼, 벤 애플렉, 우마 서먼이라는 쟁쟁한 이름들이 북적거리는 영화이니 결코 B급은 아니고, 두 영화 모두 필립 K. 딕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들이니 스토리나 아이디어의 유사성도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영화는 전형적인 필립 K. 딕의 아이디어로 시작합니다. 분해공학자인 마이클 제닝즈는 비밀 유지를 위해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뒤 늘 기억 제거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레스릭이라는 인물이 엄청난 조건으로 3년 기한의 일을 제의해요. 3년 뒤, 그 동안의 기억을 깡그리 날려버린 제닝즈는 자기 몫을 챙기려 하지만 기억을 잃기 4주 전에 자기 몫의 스톡 옵션을 모두 포기하고 개인 금고에 이상한 잡동사니들만 남겨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닝즈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레스릭과 FBI는 영문도 모르는 그를 사냥하기 시작합니다. 그들한테서 달아나는 동안 제닝즈는 그 이상한 잡동사니들 때문에 자기가 계속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멋진 도입부죠? 하지만 영화엔 그 도입부에 걸맞는 미스터리도, 서스펜스도 없습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본 과거의 자신이 주는 단서와 도움을 통해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한다는 아이디어는 흥미진진합니다. 하지만 이게 장편 액션 영화의 플롯 속에 들어가면서 맥이 풀려버렸어요.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기는 엄청나지만, 그 도움 때문에 위기 해결 자체도 쉬워져버렸는 걸요. 종종 제닝즈는 그의 생명줄인 봉투를 잃어버리거나 레스닉의 속임수에 넘어가지만 정말로 봉투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속임수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일도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평범한 컴퓨터 게임 비슷하게 흘러가요. 각 단계마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펼쳐놓고 무엇을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말이에요.

영화는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창출할 기회도 포기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우마 서먼이 연기한 레이첼 포터는 훌륭한 히치콕 여자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 주인공의 생명을 구해주면서 자기네들이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하는 여자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정보를 노출시켜 그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액션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기계에 대한 정보 역시 아무런 극적 기능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주어져버렸죠.

영화는 아이디어가 제공하는 철학적 사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이전 필립 K. 딕 영화들처럼 심각하지 않은 것까지 비난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영화는 이 설정을 가벼운 유희처럼 다루지도 못합니다. 중간에 폼을 잔뜩 잡으며 "와, 미래를 내다보는 게 이렇게 위험하구나!"라고 간단히 언급한 뒤 그냥 액션으로 빠지는 거죠. 영화가 끝나면 좀 허망합니다. 진지하게 나올 거라면 아주 진지했어야 했고 유희의 기능을 살리려고 했다면 작정하고 가벼웠어야 했어요. 이 영화는 그냥 어정쩡하군요.

액션 영화로서의 재미는? 꽤 있는 편입니다. 영화는 싼 맛이 나지만 빠르고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오우삼의 새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했을 거예요. 이 영화는 전혀 오우삼에게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니까요. 네, 이 영화에서도 '권총들고 마주보기'나 '하얀 비둘기 날리기'는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건 최소한의 정서적 기반이 있어야 먹히는 것들이잖아요. [페이첵]엔 그런 게 없습니다. 심지어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드라마의 흉내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오우삼이 남은 재료들을 가지고 만든 액션은 그냥 평범하기만 합니다. 두 과학자들이 훈련받은 악당들을 수퍼 영웅들처럼 일당백으로 때려잡는 설정도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페이첵]은 재미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가벼운 시간 때우기로는 자기 역할을 해내는 영화랍니다. 하지만 주제와 스토리, 액션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했고, 영화가 끝난 뒤 충분한 만족감을 제공해주지도 않으며, 오우삼이라는 감독의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한 영화도 아닙니다. 그냥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요. (04/01/07)

DJUNA

기타등등

[식스 핏 언더]의 데이빗인 마이클 C. 홀이 FBI 요원으로 나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캐스린 모리스가 도입부에 잠시 등장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