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레베카 밀러 Rebecca Miller

주연
키라 시즈윅....딜리아
Kyra Sedgwick....Delia
파커 포지....그레타
Parker Posey....Greta
페어루자 보크....폴라
Fairuza Balk....Paula
리오 피츠패트릭....마일러트
Leo Fitzpatrick....Mylert
팀 기니....리
Tim Guinee....Lee
페티 다반빌....실리아
Patti D'Arbanville....Celia
벤 솅크먼....막스
Ben Shenkman....Max
조엘 드 라 푸엔테....타비 마톨라
Joel de la Fuente....Thavi Matola
론 리버만....아브람
Ron Leibman....Avram
월래스 숀....겔브 편집장
Wallace Shawn....Mr. Gelb
존 벤티밀리아....나레이터
John Ventimiglia....Narrator

딜리아

레베카 밀러의 [각자의 속도]는 이 사람이 전에 쓴 동명의 단편집에서 세 편을 뽑아 직접 각색한 작품입니다. 세 장으로 나뉘어진 영화는 딜리아, 그레타, 폴라라는 세 명의 여성들의 삶을 특별한 줄거리 없이 보여주며 그들의 캐릭터를 분석합니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딜리아는 노동자 계급의 남부 여성입니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뛰쳐나온 딜리아는 친구의 차고에서 새 살림을 마련하고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됩니다.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그레타는 뉴욕의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로 타비 마톨라라는 유명한 작가의 신작을 맡으면서 직업상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세번째 주인공 폴라는 아이티 출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여성으로, 전날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인데, 두 명은 텔레비전을 통해 그 뉴스를 보고 한 명은 그 뉴스의 조연입니다. 이 연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이들이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겠지요. 중반까지 암시를 흘리다가 마지막 편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구성이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죠.

이 세 여자들의 이야기를 한 작품으로 묶는 건 구체적인 내용의 연결이 아닙니다.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지요. 우리의 세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의 전환점을 거치는 사람들입니다. 딜리아는 남편을 떠나 혼자만의 삶을 시작하는 중이고, 요리책이나 편집하던 그레타는 능력있는 문학편집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폴라는 전날 일어난 사고를 곱씹으며 정신적인 성장을 하는 중이지요. 이들은 모두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폭력적인 남편을 떠나고, 얌전한 남편에게 지리함을 느끼면서 다른 남자와 불륜 근처까지 가는 식으로요.

그레타

세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보편적인 몇 가지 틀 안에서 정의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레베카 밀러는 이들을 현대 미국을 사는 특정 타입의 여성들의 대변자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라고 할 수 있을 듯 해요.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 세 명의 개성적인 여성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영화는 종종 이죽거리면서 주인공들의 성격적인 결함을 지적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교훈적이지도 않고 비판적이지도 않습니다.

분명한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밀러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로 세 주인공들의 성격을 집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딜리아와 마일러트의 '데이트'는 어떤 드라마도 마무리짓지는 못하지만 딜리아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근사한 마지막 한 방입니다. 거의 모범적으로 캐스팅된 세 배우들 역시 이들을 완벽하게 살리고 있고요.

영화가 캐릭터들을 묘사하는 방법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레베카 밀러의 영화는 두 가지 축을 통해 진행됩니다. 영화의 비주얼은 디지털 카메라를 멋대로 휘둘러대는 전형적인 현대 미국 인디 영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과거를 설명하고 현재의 심리 상태를 기술하는 건 존 벤티밀리아가 무표정한 담담함으로 읽어내려가는 나레이션이지요. 나레이션의 힘이 너무 강하고 원작이 단편 소설들이기 때문에 영화는 종종 멀티미디어 삽화를 깐 소설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부분이지요.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문학 작품의 나태한 각색이라고 지적한답니다.

폴라

하지만 밀러의 시도는 충분히 변호될 수 있습니다. 우선 밀러는 충분히 '영화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처녀작인 [안젤라]가 좋은 예죠. 그리고 왜 문학적인 터치가 영화적인 도구의 일부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전에 [도그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적했듯이 영화도 이제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르 순수성을 수호해야 할 장르는 아닙니다. 나레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실제로 원작 소설을 읽는 것과 이 영화를 감상하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일 겁니다. 그만큼이나 배우들의 촬영과 비주얼이 강하니까요.

[각자의 속도] 정도의 균형이면 '문학적인 도구'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편입됩니다. 오히려 그 강한 문학적 측면 때문에 더 독특한 감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지요. [각자의 속도]가 밀러 최고의 걸작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 전 여전히 [안젤라]가 더 좋거든요) 다루는 도구가 영화적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감독의 나태함을 지적하는 비평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03/09/03)

DJUNA

기타등등

밀러는 지금 [Rose and the Snake]라는 제목의 신작을 찍고 있습니다. 남편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하는 첫 영화가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