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N. 투이 David N. Twohy

주연
라다 미첼....프라이
Radha Mitchell....Fry
빈 디젤....리딕
Vin Diesel....Riddick
콜 하우저....존스
Cole Hauser....Johns
키스 데이빗....이맘
Keith David....Imam
루이스 피츠-제럴드....패리스
Lewis Fitz-Gerald....Paris
클라우디아 블랙....샤자
Claudia Black....Shazza
리아나 그리피스....잭/재키
Rhiana Griffith....Jack/Jackie
존 무어....직
John Moore....Zeke
사이먼 버크....오웬즈
Simon Burke....Owens
레스 챈터리....슐레이만
Les Chantery....Suleiman
샘 사리....하산
Sam Sari....Hassan
피라스 디라니....알리
Firass Dirani....Ali

(스포일러가 잔뜩 있습니다)

듀나 [피치 블랙]은 80년대 이후 유행했던 [에일리언]식 괴물 영화 장르에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지옥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계 생물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소그룹에 대한 이야기란 말이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정을 묘사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항성간 우주선 한 대가 불시착했습니다. 40여명의 승무원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10명 정도죠. 이 행성은 세 개의 태양 때문에 밤이란 게 없지만 22년만에 한번씩 엄청난 일식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일식이 찾아오면 지하에서 숨어 있던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날개를 치며 튀어나오죠. 주인공들이 이들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빛입니다. 빛만 닿으면 이 괴물들의 몸은 말 그대로 부식되어 버리거든요.

파프리카 어떻게 낮만 있는 행성에 사는 생물이 그런 식으로 진화할 수 있지요?

듀나 모르겠어요. 아마 그곳에서 진화한 생명체가 아닌 모양이죠. 아니면 그곳 생명체들은 지하에서 진화했거나요.

파프리카 표면에 있는 거대한 동물들의 뼈는 또 뭐고요?

듀나 지상과 지하에서 각자 진화했나 보죠. 하긴 그런 식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겠네요. 양쪽 모두 그곳 생태계를 설명하지 못해요. 아무리 봐도 그곳은 식물도, 초식동물도 없이 오로지 육식동물만 존재하는 곳처럼 보이니까요. 하긴 그런 비틀린 진화 때문에 다른 생물들이 모두 멸종했다고 우길 수도 있겠군요.

파프리카 이 영화에는 그만큼이나 위태로운 설정도 있습니다. 아마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일식 말이에요. 꽤 복잡한 태양계죠. 파란 빛의 거대한 항성 하나와 서로의 주위를 도는 두 개의 노란빛 항성들이 존재하고 무대가 되는 행성은 거대한 토성형을 이웃하고 있고요.

듀나 영화에 태양계 모형이 하나 나오니까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죠. 위태로운 구조지만 또 불가능할 것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들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피치 블랙]은 하드 SF를 의도한 작품은 아니니까요.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행성도 과학적 공간보다는 상징적 공간이에요.

저한테는 무척 종교적으로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것도 삭막한 사막에서 튀어나온 기독교나 유태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의 우화 같아요. 몇몇 부분은 구체적인 종교적 요소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이 골짜기에서 괴물들의 습격을 맞서는 장면은 관객들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운운으로 이어지는 시편 구절로 자연스럽게 인도합니다. 어두운 지하에서 날개치며 솟아 오르는 괴물들은 전형적인 서구식 악마 이미지고요. 빛과 어둠의 분명한 대조도 무시할 수 없고, 결정적으로 영화 자체가 희생과 개심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파프리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영화에서도 죄의식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드라마를 만들어내죠. 단지 여기에서 전이되는 것은 죄가 아니라 희생입니다. 영화 도입부를 보면 프라이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승객을 버리려 하지만 동료인 오웬즈가 그녀의 그런 행동을 막죠. 이 과정을 통해 오웬즈는 '성인'으로 죽고 프라이는 오웬즈의 희생을 통해 보다 도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런 과정은 영화 후반에 프라이와 리딕을 통해 그대로 다시 재현됩니다. 리딕을 구한 프라이가 괴물들에게 잡혀 날아가는 장면은 거의 승천처럼 묘사되고 있잖아요.

듀나 [피치 블랙]에게 호의적인 관객들은 기존의 살생부를 깨트린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엄격하게 자체 살생부를 따르고 있죠.

파프리카 살해 당하는 아이들은요?

듀나 이런 사막 종교들은 늘 아이들에게 가혹했지요. [욥기]를 읽어보세요. 이 영화의 아맘은 [피치 블랙] 버전 욥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인 리딕도 그렇게 예외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은 건 그가 개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인물일수록 종교적 갱생담엔 더 잘 어울리죠.

파프리카 하지만 리딕은 사악한 악당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는 존스가 더 악당으로 묘사되지요. 우린 그가 살인자라는 걸 알지만 과연 그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릅니다. 관객들은 그를 주인공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듀나 바로 그래서 영화가 더 종교적이 아닐까요? 리딕은 사악한 인물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인물입니다.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된다면 그건 단순한 갱생담입니다. 특별히 종교가 끼어들 이유가 없죠. 하지만 인간과 무관한 짐승과 같은 존재가 인간이 된다면 그건 종교적인 갱생담이 되지요.

파프리카 [피치 블랙]은 강한 종교적/윤리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는 재미는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 다행히도 그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은 꽤 창의적이지요. 어둠에 대한 공포라는 당연한 소재를 이처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도 많지 않습니다. 생태학적으로는 미심쩍고 지나칠 정도로 [에일리언] 아류라고 해도, 괴물 역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쉽게 진부해질 수 있는 장르와 소재를 생각해보면 이처럼 괜찮은 영화가 나온 것도 꽤 신기해요.

듀나 개봉 당시 비평가들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치 블랙]이 단점 없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점이 더 많은 알찬 B급 영화니까요. 특수 효과와 무대의 적절한 활용과 양질의 배우들처럼 기초적인 바탕도 단단한 영화고요.

파프리카 리딕 역의 빈 디젤과 프라이 역의 라다 미첼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배우입니다. 디젤이 카리스마가 넘쳐 흐르는 인상적인 괴물이라면 라다 미첼은 보다 세련된 테크닉의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죠. 다른 배우들도 괜찮고요.

듀나 전 기독교 대신 이슬람 교가 종교와 신을 대표하는 것이 재미있었답니다. 이슬람 교도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할리우드 영화는 드물죠. 하지만 기독교도들을 등장시켰다면 지나치게 뻔하고 또 설교하는 것처럼도 보였을 겁니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성격이 크게 다른 종교도 아니니 내용차는 별로 없지만요.

파프리카 수십년 전에 기지에서 통신이 두절되었다면 왜 파견대 같은 게 오지 않았을까요? 불시착 직전에 메이데이를 보내는 걸 들어보면 초광속통신도 가능한 모양이던데.

듀나 그러고 보면 왜 자동차들이 모두 태양열이었을까요? 아무리 낮만 있는 행성이라도 백업은 필요한 법인데. 그리고 그토록 오래 끄는 일식이면서 왜 그 사람들은 늦게까지 눈치를 못챘을까요? 행성의 고리가 지평선 위로 올라갈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어야죠. 하지만...

파프리카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는 대충 용서할 수 있다?

듀나 네, 전부는 아니지만 대충은요. 이보다 더 작위적인 설정도 많고, 영화를 보다 보면 또 잊게 됩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지 그럴싸한 건 아니니까요. (01/01/15)

D&P

기타등등

[피치 블랙]의 국내 상영제목은 [에이리언 2020]. 이런 식의 아류 제목으로 과연 관객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 가끔 마케팅 담당자들이 이해가 안 갑니다. 게다가 2020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