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파벨 클루샨체프 Pavel Klushantsev

주연
블라디미르 예멜리아노프....일리아 베르시닌
Vladimir Yemelyanov....Ilya Vershinin
게오르기 즈지요노프....보브로프
Georgi Zhzhyonov....Bobrov
게나디 베르노프....알로샤
Gennadi Vernov....Alyosha
유리 사란체프....셰르바
Yuri Sarantsev....Scherba
게오르기 테이크....컨
Georgi Tejkh....Kern
키우나 이그나토바....마샤
Kyunna Ignatova....Masha

"Planeta Bur"

파벨 클루샨체프는 러시아 SF 영화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소련이 미국과 우주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스푸트니크와 유리 가가린을 궤도에 보내고 금성과 화성과 달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동안, 클루샨체프는 레닌그라드 스튜디오에서 온갖 특수효과들을 동원해 자기만의 우주여행을 창조했습니다. 그가 그러는 동안 발명한 특수효과들은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이 그랬던 것처럼 동시대 할리우드의 업적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거창한 소개를 해놓고서 클루샨체프의 이 영화를 오늘 처음 보았으니 좀 쑥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제 탓이겠어요? 그의 영화를 구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답니다. 루시코의 얼마 되지 않는 SF 카탈로그에도 아직 그의 영화는 없습니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DVD는 [Voyage to the Prehistoric Planet] 정도인데, 이것도 사실은 오리지널 영화가 아니라 AIP의 로저 코먼이 [플라네타 부르그]의 판권을 사서 멋대로 재편집하고 베이질 라스본과 페이스 도머그가 나오는 장면을 삽입한 사기꾼 같은 영화거든요. 이 영화는 나중에 또다시 재편집되어 [Voyage to the Planet of Prehistoric Women]이라는 엉터리 TV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는 메미 반 도렌이 섹시한 금성 여인으로 나오는 장면들이 추가되었죠. (여담이지만 그 장면을 찍은 데릭 토머스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가명이었습니다.)

영화는 소련에서 세 대의 금성 탐사선을 쏘아올리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중 한 대가 그만 금성 궤도 근처에서 운석과 충돌해 박살나고 말죠. 나머지 두 대의 우주선에 탄 승무원들은 계획과 일정을 조정해 금성에 착륙합니다. 착륙에 성공한 그들은 공룡들과 싸우고, 고대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신비스러운 여자 목소리를 듣고, 문명과 진화에 대해 토론합니다. 네, 제가 정말 이번 영화제에서 보고 싶었던 내용의 영화랍니다. 우직하고 단도직입적인 50년대 우주탐험 영화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대단한 과학적 정합성을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거대한 고대 생물들이 부글거리는 물의 행성인 금성은 실제 금성보다는 구식 SF의 무대인 금성에 가깝죠. 운하가 깔린 화성처럼요. 하지만 충분히 이해 가능해요. 금성은 두꺼운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엔 표면 관측이 불가능했거든요. 소련의 금성 탐사도 초기 단계였고요. 마음껏 상상을 펼칠 핑계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클루샨체프는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합니다. 물론 고질라 옷을 입고 우주인들에게 뛰어드는 스턴트맨들은 무섭기보다는 웃겨요. 우주인들은 그렇게까지 똑똑해보이지 않고, 종종 튀어나오는 감상적인 대사들은 기가 차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적절한 모험들과 믿음직한 특수효과 그리고 설득력은 없지만 매력적인 사변들로 분주합니다.

이 영화를 '하드 SF'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클루샨체프는 최선을 다합니다. 첫 장면의 우주인들이 꼭 인공중력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어색해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자석 신발을 신고 있는 거랍니다. 클루샨체프는 나중에 여자 승무원 마샤가 무중력상태에서 떠다니는 걸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승무원들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기구도 볼 수 있고요. '존'이라는 로봇은 조금 공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못 받아들일 이유도 없지요. 그리고 실제로 금성에 사람들을 쏘아올릴 정도의 시대라면 그 정도 수준의 로봇은 개발되지 않았겠어요?

그럭저럭 유쾌하고 즐거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짜증나는 건 가끔 나오는 순진무구한 소비에트 러시아 체제 예찬이 아니라 유일한 여성 캐릭터 마샤의 묘사입니다. 한마디로 짜증나요. 중간에 남자 승무원이 "로봇이나 생각을 하지, 여자는 생각 못해"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죠. 구식 SF 팬보이들의 여성관은 철의 장벽 어느 쪽에 가도 똑같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군요. (05/07/21)

DJUNA

기타등등

컨이라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영어권 인물로 설정된 것 같습니다. 그가 관리하는 로봇 이름은 '존'이고 가끔 'OK'같은 영어 단어도 조금씩 내뱉죠.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쏘아올린 우주선 안에서 이 사람이 뭐하고 있는 건지는 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