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성수

주연
이나영....나영주
장혁....박문수
안젤라 켈리....캐서린
Angela Kelly....Catherine
김인문....영주 외할아버지
나문희....문수 모
김용건....영주 부
김영애....영주 모
최주봉....동사무소 동장
이창환....단어왕
정석용....병우
황현인....학습녀
강남영....보경

문수와 영주

[엽기적인 그녀]는 한국식 코미디의 서브 장르를 하나 탄생시켰습니다. 온갖 막나가는 장르 도구들을 용감하게 휘둘러대는 코미디와 축축 늘어지는 신파 코미디의 뻔뻔스러운 결합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코미디는 결코 내용상 새로운 점도 없었고 솔직히 저 같은 사람은 거의 견뎌낼 수도 없을 정도로 악취미적이었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상업적 성과도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 중 이 장르의 '정파'를 잇는 작품들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영어완전정복]밖에 없는 것 같지만 요새 제작되고 있는 [그녀를 모르면 간첩] 같은 영화들도 대부분 이런 식의 코미디 도구를 택하고 있을 게 거의 분명하니 이 유행의 흐름은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어완전정복]은 어쩔 수 없는 '정파'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영어학원에서 만난 '대한민국 9급 공무원' 영주와 백화점 직원 문수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바람둥이 문수가 영어 강사 캐서린을 포함한, 가능성있는 모든 여자들에게 작업을 하는 동안 영주는 트랙터처럼 우직하게 문수한테 달라붙는데, 그러는 동안 온갖 노골적인 개그들이 튀어나오는 거죠. 물론 이 장르의 공식대로 후반부엔 신파 멜로가 첨가됩니다. 그건 입양되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문수의 동생과 그 동생을 문수의 애인으로 착각하는 영주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완전정복]이 이 장르에 뭔가 새로운 것을 추가했을까요? 아뇨. 이 영화의 코미디는 우리가 이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수준만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건 하나에요. 예쁜 여자 배우를 만화적 장치들로 '망가뜨리는' 거죠. 물론 망가뜨린다는 건 대한민국 관객들이 생각하는 '예쁜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에서 반발짝쯤 멀어진다는 것이지 정말로 망가진 모습으로 나오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엔 그냥 또다른 '예쁨'에 불과한 것 같아요.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것도 상상력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기계적으로 연상하는 창의성이나 새로움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냥 이미 존재하는 장르 도구들의 노골적인 사용인 거죠. 처음 나왔을 때는 그 용감함을 칭찬할 수 있겠지만 관객들이 이런 장치들에 익숙해진 지금은 그냥 장난일 뿐이에요.

그래도 영화는 그럭저럭 이야기를 끌어가긴 합니다. 우선 배우들은 괜찮습니다. 사실 이 부류의 영화들은 모두 잘 캐스팅된 편이었고 [영어완전정복]도 예외는 아닙니다. 장혁의 오버하는 바람둥이 이미지는 거의 정통적인 선택입니다. 자기가 늘 평범하다고 투덜대는 주인공을 맡기엔 이나영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 배우는 늘 약간 자신없고 기 죽어있고 살짝 중심에서 어긋나 있는 캐릭터에 잘 맞는 사람이라 비교적 캐릭터에 맞답니다. 스토리는 따분하지만 엉터리 영어와 엉터리 한국어, 콩글리시가 공존하는 언어적 농담도 꽤 먹힙니다.

그러나 영화는 더 나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컴플렉스에 시달려봤을 이 '영어'라는 절실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치고는 영어의 비중이 너무 빈약하단 말이에요. 차라리 [똑바로 살아라]의 옛날 에피소드들이 훨씬 이 소재를 잘 살렸었지요. (형욱이 영어 공부 소동이나 응경의 고스톱 강좌 에피소드들을 생각해보세요.)

네, 원래는 영어학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었다가 포기하고 정통적인 로맨스를 만들었다는군요.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어려웠을 거라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톡톡 튀는 소재를 평범한 로맨스로 개조한 선택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아뇨, 전 그냥 영화가 쉬운 길을 택했을 뿐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영주의 연애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영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남성중심에 조금은 자아도취적인 영화들을 만들어왔던 김성수가 이런 식의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한 것에 놀라워합니다. 뭐, 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전환 속에서 유지되는 자기 개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장르의 힘이 너무 컸던 모양입니다. (03/11/14)

DJUNA

기타등등

홈페이지에는 영화에서 삭제된 영주의 과거 연애담들이 서비스되고 있더군요. 이런 식으로 잘린 장면들을 재활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