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제이 즈왑스키 Andrzej Zulawski

주연
이자벨 아자니....안나/헬렌
Isabelle Adjani....Anna/Helen
샘 닐....마크
Sam Neill....Mark
하인츠 베넨트....하인리히
Heinz Bennent....Heinrich
요한나 호퍼....하인리히의 어머니
Johanna Hofer....Heinrich's mother
마르기트 카르스텐센....마지 글룩마이스터
Margit Carstensen....Margie Gluckmeister
마이클 호그벤....밥
Michael Hogben....Bob
칼 두엘링....탐정
Carl Duering....Detective
숀 로튼....짐머만
Shaun Lawton....Zimmermann

1.

안나와 마크는 한창 위험한 고비에 접어든 젊은 부부입니다. 마크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버리려고 하지만 아내 안나가 정체불명의 어떤 남자랑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폭발하고 말죠. 안나는 집을 떠나고, 아들 밥과 함께 집에 남은 마크는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아내를 미행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내의 아파트로 들어간 사립탐정은 실종되고, 사라진 부하를 따라 들어간 소장 역시 같은 운명을 당합니다. 그러는 동안 안나와 마크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2.

[포제션]은 괴상한 영화입니다. 안제이 즈왑스키라는 남자의 악취미를 고려해도 괴상한 건 마찬가지지요. 적어도 이 영화의 섹스신은 즈왑스키가 지금까지 만든 것들 중 가장 고약합니다.

얼마나 지독하냐고요? 안나의 남자 친구는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카를로 람발디가 풀과 콘돔을 뒤섞어 만든 괴물이었지요. 이 피투성이 문어처럼 생긴 괴물이 꿈틀거리는 촉수로 아자니의 몸을 휘감는 광경은 정말 뭐랄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괴물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요? 아니,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건 뭘까요?

글쎄요, 말하기 아주 쉽기도 하고 아주 어렵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말이 안 되거든요. 플롯은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뻥뻥 나 있고 사건의 대부분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어정쩡하기 때문에 평론가들의 반응은 극을 달릴 수밖에 없죠. 바보 같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무시하거나 뭔가 있다고 생각하고 부서진 퍼즐을 열심히 끼워 맞추거나요.

둘 다 아주 올바른 접근법은 아닐 겁니다. [포제션]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영화가 아니니까요. 이 영화의 초현실주의는 살바도르 달리의 것과 같이 엄격하게 계산되고 위장된 것이 아닙니다. 즈왑스키는 자동기술로 시를 쓰던 초기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마구 써갈겼을 거예요.

즈왑스키가 나중에 고백했지만, 이 영화는 자서전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당시 마크처럼 아내와 헤어진 뒤였다죠. 자기 나라에서 내팽겨쳐지고, 사생활도 박살나고, 돈도 궁했던 이 성질 더러운 남자가 뉴욕의 싸구려 호텔방에 쭈그리고 앉아 비명 지르듯 각본을 써갈겼으니 거기서 문어 괴물과 섹스하는 여자에 대한 스토리가 나오는 건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어요?

결국 남은 것은 정서적인 측면입니다. 그거야 스크린 정면에서 넘쳐 흐르니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겠죠. 특히 안나가 지하철 통로에서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그 유명한 장면에서는요. 하긴 그 장면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제정신인 적은 없습니다. 모두 자해를 하거나 누구를 죽이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아니면 그 비슷한 미친 짓을 하고 있죠.

이런 막나가는 괴상함과 정서적 폭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먹힐 겁니다. 전 즐거웠어요. 막나가는 영화가 주는 해방감이란 게 있잖아요.

3.

[포제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자벨 아자니를 빼먹을 수는 없죠. 이 영화는 아자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고 가장 아자니다운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오버 액팅이 도를 넘어서고, 좋게 말하면 오페라틱하죠. 저야 아자니의 팬이니까 후자 쪽으로 이야기할 겁니다. 그럴 근거도 있거든요. 아자니는 이 영화에서 안나와 정반대 성격의 인물인 초등학교 교사 헬렌 역도 함께 하고 있는데, 이 대조적인 두 연기를 비교해보면 이 미친 배우가 사실은 진지한 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샘 닐한테도 이 영화는 중요합니다. 닐이라는 배우를 국제 무대에 진출시킨 최초의 영화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는 그를 대표하는 상반된 페르소나들을 한꺼번에 완성시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오쟁이진 남편과 정신나간 호러 영화 주인공 말이에요.

4.

[포제션]은 미국에서 40여분 정도 잘려나가고 재편집된 버전으로만 공개되었습니다. 영어권 배급을 위해 영어로 찍은 영화가 이 꼴이 났으니 완전한 계산 착오였던 셈이죠. 감독판이 영어권 시장에 소개된 것은 극히 최근 일입니다. 얼마 전에 Anchor Bay에서 무삭제 버전 감독판 DVD와 비디오를 냈거든요. 그런데 이 DVD의 버전은 123분이군요. 제가 알기로는 [포제션]의 원래 상영시간은 127분입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00/05/20)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와 [헬 레이저]의 유사성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군요. 두 영화 모두 괴물 연인을 숨겨놓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클라이브 바커가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알 수 없죠.

2. 이자벨 아자니는 이 영화의 시사회가 끝난 뒤 자살을 기도했다더군요. 그 사람다운 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