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필 로젠탈 Phil Rosenthal

주연
빌 클린턴
Bill Clinton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
샘 도널드슨
Sam Donaldson
알 고어
Al Gore
케빈 스페이시
Kevin Spacey
헬렌 토머스
Helen Thomas

임기는 거의 끝나가고 알 고어와 힐러리 모두 선거 운동 때문에 백악관을 떠나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무지 심심해졌습니다. 텅 빈 백악관에서 클린턴은 직원들을 대신해서 전화를 받고, 종이로 새를 접고, 덜컹거리는 자판기와 씨름을 하고, 힐러리의 점심 도시락을 싸며 남아있는 나날들을 보냅니다...

이런 줄거리만 본다면 [클린턴 대통령: 마지막 나날들]은 [투나잇 쇼]나 [레터맨 쇼]를 위해 만들어진 코미디 클립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5분짜리 비디오 단편은 한 가지 면에서 그런 코미디 클립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여기 나오는 클린턴은 클린턴 흉내를 내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진짜 클린턴입니다. 클린턴 뿐만 아니라 조연으로 등장하는 알 고어, 힐러리 클린턴, 헬렌 토머스와 같은 사람들 모두 진짜지요.

[클린턴 대통령: 마지막 나날들]은 클린턴 임기 말년에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위한 만찬회를 위해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저널리스트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였겠지요.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놀려대는 코미디 비디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 일이어서 당시 꽤 자주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꽤 재미있는 단편입니다. 일급 출연진을 등장시킨 홈 비디오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빌 클린턴이라는 남자의 스타 파워와 레임덕 위치로 떨어진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럴싸한 농담 때문에 작품이 주는 인상은 상당히 강합니다.

이 비디오에도 우리가 귀담아 들을만한 정치적 교훈이 담겨 있을까요? 글쎄요. 우리 정치가들 보고 빌 클린턴처럼 코미디를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클린턴은 예외적일 정도로 쇼맨십이 풍부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또 이렇게 코미디를 잘하고 쇼맨십이 풍부하다고 해서 좋은 정치가라는 법도 없고요.

그러나 이 비디오를 하나의 척도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 해보셨어요? 왜 우리 나라 정치가들은 그렇게 재미가 없을까요? 그들은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자기 연출도 못하며 툭하면 고약한 성미나 드러내는 매력없고 따분한 중년 남자들입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에 그렇게 서툰 걸까요?

한마디로 그런 식의 이미지 관리가 정치적 생명과 크게 관계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들이 민주주의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팔지 않는다는 말도 되겠지요. 나쁜 것이냐고요?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약간 의미를 넓힌다면 그건 그들이 국민들의 의견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간접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멋대로 생각의 사슬을 끌어낸다면 보다 순수한 민주주의에 가까운 나라의 정치가들일수록 이미지 연출이 능하고 권위적인 면이 적다는 일반 법칙이 성립되겠지요. 빌 클린턴이 코미디 비디오를 찍었다고 클린턴이 대단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코미디 비디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민주주의에 가까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클린턴처럼 코미디 비디오를 찍거나, 줄리아니 시장처럼 SNL 호스트를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발 좀 그럴싸한 모양의 정치가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을 할 줄 알고 그럴 듯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왜 다들 외양의 중요성을 그렇게 간과하고 있는 걸까요? (01/02/02)

DJUNA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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