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 라이트 Joe Wright

주연
키라 나이틀리....엘리자베스 베넷
Keira Knightley....Elizabeth Bennet
매튜 맥페이든....다시 씨
Matthew Macfadyen....Mr. Darcy
탤룰라 라일리....메리 베넷
Talulah Riley....Mary Bennet
로자먼드 파이크....제인 베넷
Rosamund Pike....Jane Bennet
지나 말론....리디아 베넷
Jena Malone....Lydia Bennet
케리 멀리건....키티 베넷
Carey Mulligan....Kitty Bennet
도널드 서덜랜드....베넷 씨
Donald Sutherland....Mr. Bennet
브렌다 블리신....베넷 부인
Brenda Blethyn....Mrs. Bennet
클로디 블레이클리....샬롯 루카스
Claudie Blakley .... Charlotte Lucas
사이먼 우즈....빙리 씨
Simon Woods....Mr. Bingley
켈리 라일리....캐롤라인 빙리
Kelly Reilly....Caroline Bingley
루퍼트 프렌드....위컴 씨
Rupert Friend....Mr. Wickham
톰 홀랜더....콜린즈 씨
Tom Hollander....Mr. Collins
주디 덴치....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
Judi Dench....Lady Catherine de Bourg
탐진 머천트....조지아나 다시
Tamzin Merchant....Georgiana Darcy

리지

"제니퍼 일리와 콜린 퍼스가 주연한 끝내주는 미니 시리즈가 이미 나왔는데, 왜 또 [오만과 편견]을 각색해야 해?" 이 말은 조 라이트의 새 영화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뒤부터 제가 끝도 없이 들어왔던 말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불평이 사라졌을까요? 아뇨. 라이트의 [오만과 편견]엔 제인 오스틴 열성팬들과 BBC 미니 시리즈 팬들의 눈에 거슬릴 만한 수많은 구멍들이 있습니다. 원작의 팬들은 영화의 리전시 시대 묘사가 고증을 멋대로 무시하고 있고 캐릭터들과 대사들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10년 전에 필이 꽂힌 콜린 퍼스 팬들은 매튜 맥페이든의 다시를 절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요. 넉넉한 러닝타임을 과시했던 미니 시리즈와는 달리 이야기가 가볍다는 지적도 있고요.

아마 다들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라이트의 [오만과 편견]은 멋진 영화이며 고유의 장점도 많습니다. 하긴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죠.

라이트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작품이 지금까지 나온 제인 오스틴 영화들 중 가장 풍성한 영화적 쾌락을 전달하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제인 오스틴 영화들은 정적이고 얌전합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카메라는 거의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에서처럼 종횡무진 움직입니다. 베넷 집안을 소개하는 도입부의 복잡한 롱 테이크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스타일만 따진다면, 조 라이트의 [오만과 편견]은 액션 영화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부극이요.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시의 초반 대결은 대부분 총격전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무도회에서 다시에게 마지막 한 방을 던진 뒤 회심의 미소를 짓고 나오는 엘리자베스를 따라가는 긴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세요. 여기서 엘리자베스는 서부의 총잡이입니다. 두 사람의 보다 긴 혓바닥 대결이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으로 그려지는 두 번째 무도회의 댄스 장면은 육체적인 움직임이 가세되어 거의 펜싱 대결처럼 느껴지고요.

영화의 공격적인 댄스와도 같은 스타일은 코미디와도 잘 어울립니다. 실제로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사라진 대사 코미디 대부분이 이를 통해 보완되지요. 이 영화의 카메라는 사람들 틈 사이를 오가면서 그들을 연결하고 고립시키고 훔쳐보고 심지어 자기만의 상황까지 만들어냅니다. 그 때문에 영화가 지나치게 들떠 보이긴 하지만, 설득력 없는 스타일은 아니죠.

원작이 그리고 있는 리전시 시대의 계급 사회 묘사도 구술되는 대신 보여집니다. 실제로 각본만 본다면 영화의 계급 묘사는 비교적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시각적 정보는 훨씬 많지요. 영화가 드라마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인류학자처럼 꾸준히 정보를 수집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오만과 편견] 각색물들 중 이름 없는 하녀의 일상적인 노동을 이만큼 깊이 다룬 작품은 없을 거예요. 그 때문에 딸들을 어떻게든 시집 보내려는 베넷 부인의 속물적인 동기가 그 어떤 때보다도 분명한 설득력을 얻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베넷 집안은 정말로 가난하니까요.

라이트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원작보다 따뜻합니다. 오스틴 세계의 약자들, 그러니까 위트나 지성을 갖추지 못했고 예쁘지도 못한 콜린스 목사나 메리 같은 사람들도 이 영화에서는 조금 더 따뜻한 관심을 받습니다. 이 역시 각본보다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번갈아 감싸 안는 듯한 유려한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어요. 순수주의자들은 당시 오스틴 세계 사람들을 제대로 묘사한 게 아니라고 불평하겠지만, 라이트가 그려낸 무도회 장면들은 거의 비스콘티의 [레오파드]와 맞먹을 정도로 내용이 풍성합니다.

배우들의 캐스팅의 경우, 모범적이기도 하고 효과적으로 어긋나 있기도 합니다. 주디 덴치나 브렌다 블리신은 이상적인 캐스팅이지요. 10년 전에 영원한 사랑을 선언한 콜린 퍼스 팬들이 이를 갈고 있어서 그렇지, 매튜 맥페이든도 마찬가지고요. (전 맥페이든의 비중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가 엘리자베스보다 더 나서서는 안 되지요. 결국 그 캐릭터는 엘리자베스 베넷이라는 캐릭터에서 파생된 존재이니 관찰과 상호작용의 대상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베넷씨 역의 도널드 서덜랜드와 엘리자베스 역의 키라 나이틀리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이들은 모범적인 오스틴 캐릭터로 보이기엔 지나치게 현대적이죠. 하지만 원래부터 이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살던 시대와 아주 맞는 편은 아니었으니 이 어긋난 느낌은 오히려 장점처럼 보입니다. 키라 나이틀리의 젊음 역시 장점이죠. 엘리자베스 베넷의 실제 나이와 가장 맞아 떨어지는 배우니까요. 다시 역의 배우를 능가하는 스타 퀄리티를 갖춘 배우라는 점도 역시 장점이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조 라이트의 영화는 결정판 [오만과 편견]은 아닙니다. 10년 전에 나온 BBC 버전과 비교해 본다면, 두 작품은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판 [오만과 편견]이 더 근사한 영화적 쾌락을 선사한다면 BBC 버전은 원작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더 충실한 식이죠. 어느 쪽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귀찮다면 다시 원작 소설로 돌아가 여러분만의 엘리자베스와 다시를 상상할 수도 있고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까? (06/03/28)

DJUNA

기타등등

절대로 화면 비율 지키는 영화관에서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면이 한쪽에 쏠리는 대한극장과 같은 곳에선 영화가 종종 사용하는 대칭 이미지가 심한 손상을 입을 거예요. 가로자막이니 상황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 같으면 모험은 안 할 겁니다. 어차피 꽉 찬 시네마스코프의 느낌이 필수적인 영화거든요.

[황폐한 집]에서 에이다를 연기한 케리 멀리건이 키티로 나오더군요. 영화 내내 약먹은 것처럼 키들거리는 것밖엔 한 일이 없지만요. 그리고 [황폐한 집]에서 훨씬 더 예쁘게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