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크 니콜스 Mike Nichols

주연
존 트라볼타....잭 스탠턴 주지사
John Travolta....Gov. Jack Stanton
엠마 톰슨....수잔 스탠턴
Emma Thompson....Susan Stanton
빌리 밥 손튼....리처드 지몬즈
Billy Bob Thornton....Richard Jemmons
에이드리언 레스터....헨리 버튼
Adrian Lester....Henry Burton
모라 티어니....데이지 그린
Maura Tierney....Daisy Green
래리 행맨....프레드 피커 주지사
Larry Hagman....Gov. Fred Picker
폴 길포일....하워드 퍼거슨
Paul Guilfoyle....Howard Ferguson
다이앤 래드...마마 스탠턴
Diane Ladd....Mamma Stanton
로브 라이너....이지 로젠블라트
Rob Reiner....Izzy Rosenblatt
캐시 베이츠....리비 홀든
Kathy Bates....Libby Holden

1.

글쎄요. 요새 미국 대통령 선거 전초전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적어도 빌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는 무척 흥미진진한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가끔 너무 흥미진진해져서 탈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영리하고 나름대로 매력적이었으며 결과가 어찌되었건 정치적 비전도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건 지난 8년 동안의 백악관은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헐리웃의 백악관 열풍도 어느 정도 그들의 존재에 기인하는 것이었지요. 워낙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이미지 변화도 엄청났으니까요.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대통령 영화들 중 가장 직접적으로 클린턴 부부에 접근한 영화입니다. 영화 속의 스탠턴 부부가 클린턴 부부를 모델로 한 것이란 건 의심할 여지도 없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섹스 스캔들과 같은 주변 설정 역시 실제 사건들에게 빌어오고 있으니까요. 원작 소설을 익명으로 출판한 조 클라인은 클린턴 선거전의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므로, 소설의 일부는 우리가 아는 오피셜 스토리보다 훨씬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2.

[프라이머리 컬러스]의 가장 큰 흥행 포인트는 실제 인물과 극중 인물과의 유사성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당시는 한창 클린턴 관련 스캔들이 요란했던 때라 극중 인물과 사건의 유사성을 잊고 영화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요.

하지만 과연 클린턴 부부와 스탠턴 부부의 연관성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현 대통령의 선거 이야기라는 가십성 소재를 넘어서는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르윈스키 스캔들과 같은 요란한 가십들이 사그러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3.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흑인 민권운동가의 손자인 헨리 버튼이 잭 스탠턴의 선거 운동에 끼어들면서 시작합니다. 버튼은 지금까지 그를 끌어왔던 정치적 이상주의의 비현실성에 불만을 느끼고, 도덕적으로 위태로운 인물이지만 비전과 정치적 결단력이 있는 잭 스탠턴을 선택한 것이죠.

버튼이 선거 운동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우리를 미국 정치 게임의 한가운데로 집어던집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원하는 정보들이 제공되지요. 섹스 스캔들에 대한 대처, 다른 후보자를 공략하려는 전략,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이 지독하게 클린턴을 닮은 남자의 정신없는 초상.

도입부는 가벼운 정치 풍자극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92년에 있었던 구체적인 정치 게임에 대한 야유처럼요. 그러나 영화가 흘러가면서 영화는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그건 정말로 고전적인 나레이터인 헨리 버튼의 각성을 통해 전개되지요.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질문은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의 영역이지만, 꼭 정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물을 수밖에 없는 소박한 질문이죠.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어디까지 용납될까? 과연 그 목적은 수단에 오염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소박한 질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결코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며, 만약 쉽게 답했다고 하더라고 그걸 가지고 버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심심풀이로 정치가들을 놀려대지만, 이 인간 사는 세계에서 오염되지 않고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언가를 해내려면 구정물에 손을 담구어야 하죠. 논의되는 것은 정도차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경계인 거죠?

버튼이나 영화나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리비의 '테스트(이 영화의 전체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단순한 클라이맥스라는 생각도 드는데)'도 스탠턴 부부나 정치가들에 대한 참수형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대상을 보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겠죠. [프라이머리 컬러스]의 장점은 그 균형감각에 있습니다.

4.

[프라이머리 컬러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스탠턴 부부의 묘사입니다. 이들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캐리커처도 아니고 악당도 어리광대도 아닙니다.

스탠턴만 봐도 그렇지요. 그는 결코 고결한 남자는 아니지만 이해심과 정치적 솔직함, 비전이 있는, 정치적으로 투자해도 될 만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지독하게 재미있는 사람이지요. 에너지와 뻔뻔스러움, 정치가적 교활함과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진함이 뒤섞인 이 남자는 영화의 엔진과도 같습니다. 심지어 화면에 등장하지 않을 때도 그래요.

존 트라볼타는 클린턴 특유의 느릿느릿한 남부 말투와 개방적인 제스처를 이용해서 그럴싸한 초상화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끼기에만 급급한 것도 아니예요. 그는 적당한 선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얄팍한 캐리커처에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캐릭터 구축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무렵엔 트라볼타는 클린턴보다는 스탠턴으로 남습니다.

존 트라볼타와는 달리 엠마 톰슨은 수잔 스탠턴을 연기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을 의식적으로 흉내내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수잔은 잭 스탠턴보다 훨씬 동정가는 인물이 됩니다. 영화는 수잔 스탠턴의 심리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지만, 관객들은 이 캐릭터의 혼란, 분노, 정치적 야망, 도덕적 갈등을 쉽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신병원에서 막 뛰쳐나온 리비 홀든이 개입합니다. 능력있는 '쓰레받기'지만 닳을대로 닳은 정치참모답지 않게 이상주의자의 영혼을 숨기고 있는 중년 게이 여성이지요. 이 닳아빠진 동시에 고결한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캐시 베이츠입니다. 오래간만에 본때를 보여주는 연기였어요.

에이드리언 레스터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과장되지 않은 심각함을 품위있게 보여줍니다. 그가 연기하는 버튼의 고전적인 전형성은 영화에 익숙한 깊이를 부여합니다. 좋은 의미에서요.

5.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디테일에 비해 깊이는 종종 얇아지며 더럽디 더러운 정치판을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원초적인 질문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미롭고 사실적인 캐릭터들과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 그리고 내부자의 시점에서 본 미국 정치판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을 담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많은 부분이 영리하며 대답 대신 질문을 더 많이 던지긴 하지만 그 질문의 존재 자체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SNL가 더이상 클린턴 패러디를 하지 않는 때가 되면,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정치에 대한 보다 원형적이고 고전적인 드라마로 다시 인식될지 모릅니다. 적어도 저희는 [모두가 왕의 사람들]의 영화 버전보다는 [프라이머리 컬러스] 쪽이 더 좋았습니다. (99/11/14)

D&P

기타등등

국내 출시된 비디오는 15분에서 20분 정도 잘린 것 같더군요. 끝의 엔드 크레딧도 잘렸고요. 두시간 넘는 영화는 이 꼴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잊어선 안되는 건데. 혹시 극장에서 보신 분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