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카타부치 수나오 Sunao Katabuchi

주연
쿠와시마 호우코....아리테 공주
Houko Kuwashima.... Princess Arîte
코야마 타케시....보악스
Takeshi Koyama....Boax
타카야마 미나미....앰플
Minami Takayama....Ample
누마타 유스케....그로벨
Yûsuke Numata....Grovel
쿠로기 사토미....마녀
Satomi Koorogi....The Witch
사사키 우코....나레이터
Yûko Sasaki....Narrator

아리테 공주

십 여 년 전, 다이애나 콜즈라는 영국의 여학교 교사가 [The Clever Princess]라는 짧은 동화책을 낸 적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90년에 [슬기로운 아리테 공주]라는 제목으로 소학사에서 출판되었어요.

[슬기로운 아리테 공주]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전래 동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판이했습니다. 하긴 그게 콜즈의 전략이었어요. 익숙한 동화 세계를 배경으로 깔고 내용을 뒤집는 것이었지요. 이 동화에서 마법사를 해치우는 모험을 벌이는 사람은 왕자들이 아니라 주인공 공주입니다.

이 작품을 걸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기엔 메시지와 전략이 너무 노골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분명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동화는 드물었어요. 그래서인지 전 아직도 이 동화의 페미니스트 투사인 아리테 공주를 아주 좋게 기억한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인 [아리테 공주]는 바로 [슬기로운 아리테 공주]의 일본 애니메이션 버전입니다. 조금 당혹스러운 각색일수도 있어요. [슬기로운 아리테 공주]는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될 수 있을만큼 큰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결정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작품도 아니고요. 게다가 너무나도 노골적인 메시지가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꽤 그럴싸하게 이를 해치웠습니다. 영화는 원작을 적당히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결과가 썩 좋습니다.

일단 기본 줄거리는 같습니다. 예언에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다는 이유로 마법사 복스가 아리테 공주를 죽이기 위해 세 가지 임무를 부여한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아리테 공주, 마녀 와이젤 할머니, 요리사 앰플, 악당인 마법사 복스, 부하인 그로벨, 심지어 짜증나는 단역인 다라보어 왕자와 같은 캐릭터들도 그냥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을 개구리로 만드는 마법이나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 세가지 임무와 같은 원작의 요소들도 버리지 않았고요.

그러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아마 배경 때문이겠지요. 원작은 왕족들과 마법사들만 사는 전래 동화의 세계에서 벌어집니다. 하지만 영화의 무대는 어느 정도 사회적인 깊이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사실적인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요. 대충 [라퓨타] 정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법사가 등장하지만 사실 그 사람도 사라진 아틀란티스 문명의 생존자이며 그가 부리는 마법도 위장한 첨단 과학 기술이거든요. 종종 등장하는 SF적 요소가 동화배경과 충돌하기는 하지만 노동의 소중함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영화 주제에 꽤 잘 맞습니다.

캐릭터도 다릅니다. 처음부터 근심 걱정 없는 명쾌한 투사인 원작의 아리테 공주와는 달리, 영화 속의 아리테 공주는 조금 어둡고 세상에 대해 자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영화가 진행되어 갈수록 아리테 공주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가고 세상과 싸워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지요.

원작의 복스는 그냥 평면적인 남성우월주의자 악당이지만, 영화에서는 사라진 문명의 광휘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잔존자입니다. 와이젤 할머니는 마법에 대한 무의미한 희망을 포기하고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마녀고요. 앰플은 맘 착한 요리사에서 레닌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노동자 계급의 롤 모델로 바뀌었군요. 전체적으로 이들은 원작보다 입체적인 인물들이며 속도 깊습니다.

배경과 캐릭터들이 깊어졌으니 내용도 그만큼 깊어졌습니다. 영화는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주고 내용에 현실 의식을 심어주며 동화적 결말을 거부합니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싸움이라는 도식 속에서도 단순한 선악대결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요. 교훈이 강한 영화지만 무작정 강요는 없습니다. 영화 말미에 마침내 자유를 얻은 아리테 공주와 마법사 복스의 손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을 보세요.

결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특히 단순한 전래 동화 스타일의 이야기에서 3차원적인 드라마로 이행되는 과정은 상당히 눈에 띄는 단점들을 남겼습니다. 세 가지 소원과 세 가지 임무는 자연스러운 스토리에 걸려 이상해졌고, 종종 캐릭터들의 행동 동기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복스의 마법에 걸린 아리테 공주의 감금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중반이 늘어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내용에 비해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요. SF적 요소는 남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설명도 부족합니다.

애니메이션 스타일 역시 강한 편은 아닙니다. 미야자키 라이트 쯤 된다고 할까요? 동글동글한 스타일은 닮았지만 그만한 개성이나 상상력은 없습니다. 하긴 비교적 저예산 작품이며 감독이 또 [마녀택급편]의 스탭이었다고 하더군요. 콜즈의 원작도 그 영화를 만들 때 읽었답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아리테 공주]는 여전히 상당히 강한 영화입니다. 그건 이 영화가 아마 요새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진지한 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교훈이 이만큼 강하면서도 설교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그만큼 영화가 그 주제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 때문에 염소 한마리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기 위해' 세상 속으로 떠나는 우리의 작은 주인공의 뒷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인지도 모르죠. (01/08/15)

DJUNA

기타등등

정동 A&C의 현매 방식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능률적이더군요. 그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