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방은진

주연
엄정화....정순정
문성근....오성호
권오중....정형사
최종원....변반장
유혜정....배연희
현영....최신옥
김용건....나재근
김익태....박달수
박효준....장명길
장현성....김우택
이지수....오민아

(스포일러가 있냐고요? 네, 있어요. 그게 뭐냐고요? 노골적인 힌트 하나 나갑니다. 코.넬. 울.리.치.)

순정

[오로라 공주]의 각본은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 [검은 옷의 신부]에서 기본 설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을 하는 거죠. 단지 죽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죽는지도 잘 모르고 당하는데, 그건 그들이 주인공을 그런 상황까지 몰아넣은 비극에서 자기네들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소설 대신 그 소설을 각색한 프랑스와 트뤼포의 영화를 베꼈습니다. 이 정도면 [오로라 공주]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은 몽땅 폭로한 셈이죠.

물론 [검은 옷의 신부]의 공식을 취했다고 해서 그 소설이나 트뤼포의 영화를 그대로 따라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리오 아르젠토도 아이리시가 썼을 법한 설정으로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잖아요. 방은진의 영화도 어느 정도 차별성은 두고 있습니다. 살해당한 사람들의 책임은 조금 더 은밀하게 숨겨져 있고 살인범을 추적하는 오형사와 살인범 정순정의 관계도 더 깊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기왕 아이리시의 이야기를 빌렸다면 차라리 접근법도 따라하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선 살해당하는 희생자들이 참 약합니다. 하긴 그들의 죄가 엄청난 죄인이라는 게 아니라 얄팍하고 치졸하고 무신경한 인물이라는 것이니 논리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재미도 떨어져요. 아이리시의 소설이나 트뤼포의 영화가 재미있었던 건 그들이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잖아요. [오로라 공주]에서는 그들이 그냥 불쾌하고 쓸모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영화가 너무 쉬워집니다.

정순정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엄정화의 연기는 큰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캐릭터의 동기를 고려해 볼 때 엄정화의 정순정은 지나치게 깔끔합니다. 모든 걸 거의 완벽한 테크닉으로 아무런 동요없이 해내지요. 그렇다고 잔느 모로처럼 비극적인 냉정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특정 역을 맡은 연예인처럼 하는 거죠. 중반에 나오는 연변처녀 흉내가 대표적이에요. 엄정화는 살인마보다는 살인마를 연기하는 연예인처럼 보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조금 정신분열증적이 돼요. 감정의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오로라 공주]는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영화입니다. 할 건 다하고 있고 그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요. 하지만 영화는 지나치게 안전한 길만 골라 가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에게는 최대한의 혐오와 증오를, 주인공에겐 최대한의 동정을 끌어오기 위해 온갖 변명을 붙이다 보니 살인과 폭력의 감각이 무뎌집니다. 장르 영화를 찍는다는 걸 고려하고 열심히 그 규격에 맞추다 보니 독립된 영화 대신 살인마를 다룬 장르 공식 시험 문제에 대한 평균적인 해답처럼 보이고요. 장르팬이 아닌 신인 감독에게 장르는 오히려 함정인 것 같습니다. (05/10/19)

DJUNA

기타등등

근데, 요새 애들이 오로라 공주를 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