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토니오 루이기 그리말디 Antonio Luigi Grimaldi

주연
난니 모레티....피에트로 팔라디니
Nanni Moretti....Pietro Paladini
블루 요시미....클라우디아 팔라디니
Blu Yoshimi....Claudia Paladini
발레리아 골리노....마르타
Valeria Golino....Marta
알레산드로 가스만....카를로 팔라디니
Alessandro Gassman....Carlo Paladini
이사벨라 페라리....엘레오노라 시몬치니
Isabella Ferrari....Eleonora Simoncini
실비오 올란도....사무엘레
Silvio Orlando....Samuele
이폴리트 지라르로....장-클로드
Hippolyte Girardot....Jean-Claude

피에트로와 클라우디아

[조용한 혼돈]에서 난니 모레티가 연기하는 피에트로 팔라디니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내를 잃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동생과 함께 해변에 놀러갔다가 돌아와보니 아내는 정원에 쓰러져 죽어 있고 주변에는 경찰과 응급구조대원들이 서 있고 딸 아이는 울고 있었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평범한 일상이 어느 한 순간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린 겁니다.

이 정도면 눈물 찍찍 짜는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충분합니다. 실제로 [조용한 혼돈]이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이런 식의 멜로드라마와 거의 일치합니다.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남자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같이 남겨진 딸을 보살피게 되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피에트로도 영화 내내 정말 그렇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통 멜로드라마의 규칙을 몽땅 위반하고 있으니 재미있죠.

우선 피에트로는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가끔 독백도 나오고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폭로되는 장면들이 터져나오긴 해요. 하지만 그들을 다 모아 조립해도 피에트로 팔라디니라는 남자의 내면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는 과연 죽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슬픔과 회한이 맞을까요? 전 몰라요.

영화의 스토리도 그의 내면보다는 그의 행동에 더 집중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직접 보여주는 대신 아주 독특한 일을 합니다. 갑자기 회사에 나가는 걸 그만 두고 딸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학교가 끝날 때까지 딸을 기다리기 시작한 거죠. 순식간에 '학교 앞의 피에트로'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동네 명물이 됩니다.

그렇다고 그가 여기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나름 꽤 바빠요. 공원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학부모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고... 그리고 미국 회사와 합병준비 중인 다국적 미디어 그룹의 중역인 그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통해 일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동료들이 끊임없이 그를 찾아오고요. 학교 앞 벤치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동안 그의 정치적 가치는 오히려 더 상승하는 것 같습니다. 종종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요. 회사에 출근하면 이전투구하는 다른 동료들과 다를 게 없죠. 하지만 이렇게 벤치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 세상을 초월한 현자 취급을 받게 되지요.

피에트로의 시위는 시작했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종결되고 그와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그동안 그가 무엇을 얻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죠. 아마 피에트로 자신도 잘 모를 겁니다.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심지어 그게 자기 자신이라고 해도. (09/08/24)

DJUNA

기타등등

홍보물에는 난니 모레티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 있지만 그의 감독작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인 원작 소설도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연속성이 느껴지는 건 모레티의 기존 이미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겠죠. 우디 앨런이 그런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