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울타리 Rabbit-Proof Fence (2002) * * * 1/2

감독
필립 노이스 Phillip Noyce

주연
에블린 삼피....몰리
Everlyn Sampi....Molly
티아나 샌스베리....데이지
Tianna Sansbury....Daisy
로라 모나한....그레이시
Laura Monaghan....Gracie
데이빗 걸필릴....무두
David Gulpilil....Moodoo
인갈리 로포드....모드
Ningali Lawford....Maud
미안 로포드....몰리의 할머니
Myarn Lawford....Molly's Grandmother
데보라 메일맨....메이비스
Deborah Mailman....Mavis
제이슨 클락....릭스 경관
Jason Clarke....Constable Riggs
케네스 브래나....A.O. 네빌
Kenneth Branagh....A.O. Neville

그레이시, 데이지, 몰리
필립 노이스의 [토끼 울타리]가 소재로 삼고 있는 건 호주에서 1970년대까지 시행되었던 어처구니없는 인종차별적 정책입니다. 당시 원주민 특별법에 따르면 원주민 거주지 내의 혼혈인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아 백인 사회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나봐요. 이를 정당화시키는 거창한 논리들이 뒤에 잔뜩 붙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는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들은 어른이 된 뒤로 도시 지역의 하녀나 막노동꾼으로 투입되었으니까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1930년대 호주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나레이터인 몰리의 딸이 쓴 회상록이 원작이지요. 영화는 이 특별법에 의해 부모들로부터 격리된 세 소녀의 탈출기입니다. 14살짜리 몰리, 몰리의 동생인 8살짜리 데이지, 그들의 사촌인 10살짜리 그레이스. 보호소에서 탈출한 이들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토끼 울타리를 따라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을 떠납니다.

[토끼 울타리]는 완성된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일단 한 점 따고 가는 영화입니다. 그만큼이나 영화의 소재가 강렬하죠. 아무리 엉성하게 만들었어도 관객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에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가족한테서 떨어진 아이들, 그들을 집으로 몰고가는 귀소본능, 이들을 부당하게 학대하는 인종차별적 시스템. 벌써부터 콧날이 시큰해지지 않습니까?

필립 노이스는 특별한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소재에 접근합니다. 종종 호주의 아웃백을 무대로 한 굉장히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나오긴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는 스토리 전달과 세 명의 어린 배우들로부터 연기를 끌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세 어린 배우들 역시 쓸데없는 애교를 떨지 않으면서도 굵직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요.

이런 겸손은 어느 정도 의무감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리버럴한 백인 지식인의 죄의식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영화니까요. 그 때문인지 종종 영화는 약간 손을 봤더라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부분을 남겨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이 특별히 영화의 힘을 떨어뜨리지는 않아요. 종종 이야기가 자동항행을 하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주는 정서적 힘은 여전히 영화를 최고속도로 밀어붙이거든요.

영화가 가장 확실하게 관객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부분은 노이스가 영화로 재현한 이야기가 종결된 뒤입니다. 실제 사건을 겪은 두 생존자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영화가 보여준 사건 이후의 일들이 소개되는 동안 관객들은 그 때까지 어느 정도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한 시대와 공간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인권유린의 현실과 접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호주 정부는 '도둑맞은 세대 The Stolen Generations'로 알려진 이들에게 사과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노이스의 영화는 자국 내에서 이 쓰라린 역사를 재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저희같은 외국인들은 수십 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온몸으로 겪었던 그 끔찍한 일들을 정서적 고양을 위해 써먹고 있지만요. (04/01/13)

DJUNA


기타등등

세 소녀가 중간에 만나는 원주민 하녀 메이비스를 연기한 배우 데보라 메일맨은 호주에서 몇 안되는 성공한 원주민 배우들 중 한 명입니다. 호주 사람들에겐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서도 한두번 소개된 호주 텔레비전 시리즈 [The Secret Life Of Us]의 켈리역으로 잘 알려져 있죠. 1998년엔 [Radiance]라는 영화로 AFI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원주민 배우가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