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준익

주연
박중훈....최곤
안성기....박민수
최정윤....강석영
정규수....지국장
정석용....박기사
한여운....김양
윤주상....김국장
이일섭....김씨
김광식....장씨
노브레인....이스트 리버

박민수와 최곤

88년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로 가수왕을 차지했던 왕년의 인기가수 최곤은 지금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마초 스캔들과 폭행사건 때문에 경력은 바닥을 쳤고 그 뒤로 히트곡도 없었죠. 지금 그는 미사리 카페에서 불륜 커플을 상대로 노래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있죠. 그러다 20년 동안 그의 뒷바라지를 해온 매니저 박민수가 그에게 일자리를 물고 옵니다. 몇 달 뒤 원주방송국과 통합된다는 소문이 도는 영월지국 라디오 프로그램의 DJ일이죠. 그는 석 달만 하면 되려니 하고 건성으로 일을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프로그램은 기대하지 않았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라디오 스타]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두뇌를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라디오 스타]의 이야기는 영화라는 매체가 만들어진 뒤로 수 억 번은 반복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픽사 애니메이션인 [카]에서 거의 그대로 사용되었죠. 겉멋 든 도시 남자가 시골에서 생활하다 자기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진정한 가치(그것이 무엇이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라디오 스타]는 작정하고 만든 통속극이기도 합니다. 최곤과 박민수의 캐릭터 설정은 노골적으로 도식적입니다. 최곤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어주는 다방 아가씨의 고백은 그만큼이나 인공적이고요. 후반의 갈등을 제공하는 국면 전환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관객들은 조바심이 날 정도입니다. 어떻게 흐를지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느릿느릿하게 흘러가거든요. 물론 그 체감 속도는 상대적이지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먹힙니다. 그것도 굉장히 잘 먹혀요. 관객들은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통속적이고 진부한지 알면서도 반응합니다. 제가 본 기자시사회에서도 이 정도였다면 일반관객들의 호응도는 더 클 거예요.

아마 가장 명백한 이유는 이 영화가 정직한 통속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정말 보는 사람 코피가 터져 나갈 정도로 뻔한 통속물이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뭔가 있는 척 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는 달리 [라디오 스타]는 그 촌스러움과 통속성을 노골적으로 노출시키고 정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그 때문에 최종결과는 오히려 덜 촌스럽고 개별 요소들은 더 힘이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여전히 눈에 뜨이는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지만 점점 더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러나 [라디오 스타]를 끌고 가는 진짜 힘은 캐릭터와 배우에 있습니다. 최곤과 박민수는 도식적인 설정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지만 완성된 최종 결과는 놀랄만큼 생동감이 넘칩니다. 보고 있으면 이들에 대한 애증이 콸콸 넘치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이들을 연기한 안성기와 박중훈의 콤비 플레이는 지금까지 그들이 해 왔던 것들 중 최고고요. 실제로 20년 동안 서로를 알고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밀접한 감정의 흐름이 눈에 보입니다. 안 보일 수가 없어요.

[라디오 스타]는 영화에 등장하는 구닥다리 LP들처럼 아날로그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장생산품입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계산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죠. 그러나 일단 극장 안에 들어간 관객들을 잡아 끄는 영화의 힘은 예상 외로 강합니다. 그 힘에 끌려가는 기분도 전혀 나쁘지 않고요. (06/09/07)

DJUNA

기타등등

우리나라에서 병에 담긴 생수가 정식으로 판매된 게 언제부터였죠? 88년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