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옥사이드 팡 Oxide Pang
대니 팡 Danny Pang

주연
이심결....서심
Angelica Lee....Tsui Ting-Yin
주준위....로렌스
Lawrence Chou....Lawrence

귀역 방문

팡씨형제가 오래간만에 함께 만든 2006년작 [귀역]에서 이심결이 연기한 캐릭터 서심은 로맨스 작가입니다. 세 편의 베스트셀러를 연달아 써서 명성이 오를 대로 오른 서심은 이제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호러물에 도전하려는 중이죠. 하지만 작업은 쉽게 풀리지 않고 8년 전에 헤어진 옛 남자친구가 등장해 그렇지 않아도 싱숭생숭한 마음을 더 어지럽힙니다. 그러는 동안 서심의 주변에는 '이거 혹시 [디 아이 3] 아냐?'라는 생각이 들만한 수상쩍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보여서는 안 될 사람들이 보이고 집 안에는 자기 것보다 훨씬 긴 머리칼이 굴러다니고... 차이점이 있다면 서심 주변을 얼쩡거리는 유령들이 자기가 막 썼다가 지워버린 소설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이것만으로도 신경질적인 작가의 마음을 충분히 파괴해버릴만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한 수 더 뜹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에서 나오던 서심은 그만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의 공간으로 빠져버립니다. 핵폭탄을 맞은 홍콩 빈민가처럼 보이는 그 세계는 모든 버려진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포기한 아이디어들, 버려진 장난감들, 낙태당한 아기들, 후손들에게 잊혀진 무덤 주인들... 한참 겁에 질려 방황하던 서심은 (아마도 망자인듯한) 친척들과 한 이름없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는 서심을 현실세계로 연결하는 출구로 인도합니다.

[귀역]은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은 영화입니다. 서심이 방문한 귀역이라는 공간은 정말 온갖 주제들을 다 품고 있죠. 환경 문제, 낙태 문제,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 허구와 작가에 대한 찰리 카우프만식 고찰, 심지어 아시아 호러 영화들을 리메이크하는 할리우드의 게으름에 대한 풍자로도 읽히기도 한답니다.

근데, 이 야심은 그대로 장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 거죠. '버려진 모든 것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설정 때문에 작가들의 버려진 아이디어와 낙태된 아기들이 한군데에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하나로 취급할 수 있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낙태 문제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작가들이 버린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영화의 내용이, 주인공이 귀역에서 고생하다 교훈 얻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교훈극의 설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체적인 설정은 산만하고 어색하게 보입니다.

비교적 능숙하게 흘러가는 전반부의 귀신 영화 장르와 달리 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중후반부의 판타지 장르가 뻣뻣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두어야겠군요. 한마디로 말해 그냥 비디오 게임 같습니다. 각 스테이지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스테이지 중간중간에 정보를 얻고... 영화가 이 장르 도식들을 전혀 숨기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스토리는 그냥 따분해집니다.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면 더 좋았을지도 몰라요.

영화의 장점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가장 덩어리가 큰 건 귀역 자체죠. 스토리 자체는 별 재미가 없고 사실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도 덜컹거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곳은 흥미로운 지옥입니다. 아니면 근사한 놀이공원이거나요. 어떻게 보면 스토리는 이 놀이공원을 만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 장점은 이심결의 캐스팅입니다. 팡씨형제가 반쯤 포기한 스토리와 캐릭터는 이심결의 존재감 덕택에 간신히 지탱됩니다. 연기도 좋은 편이지만 어떤 때엔 그 겁에 질린 커다란 눈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07/03/23)

DJUNA

기타등등

영화의 결말은 굉장히 익숙하더군요. 이 게시판에서도 가끔 회상되는 모 프랑스 영화랑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