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텍스 에이버리 Tex Avery

레드

텍스 에이버리의 [레드 핫 라이딩 후드]는 그가 MGM 시절에 꾸준히 만들어온 [빨강 모자] 삼부작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다른 두 편은 [Little Red Walking Hood]와 [Little Rural Riding Hood]이지요.

영화는 처음엔 아주 온화하게 시작됩니다. 나레이터가 가식적인 목소리로 우리에게 익숙한 [빨강 모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빨강 모자, 할머니, 늑대가 차례차례 등장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늑대가 짜증을 내며 진부한 이야기의 반복에 대해 항의하고 다른 등장인물들도 이에 동참하자 영화는 현대 대도시로 무대를 옮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이 새 버전에서 늑대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도회지 바람둥이이고, 할머니는 펜트하우스에 사는 부자집 마나님이며, 우리의 빨강 모자 '레드'는 나이트 클럽의 가수입니다. 레드에 홀딱 반한 늑대는 레드를 쫓아 할머니의 펜트하우스에 뛰어들지만 곧 섹스에 굶주린 할머니의 무시무시한 추적을 받게 됩니다.

[레드 핫 라이딩 후드]는 텍스 에이버리의 MGM 시대 단편들 중 가장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질 때문일까요? 물론 잘 만든 작품이기도 해요. 하지만 인기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영화가 뻔뻔스럽게 휘둘러대는 섹스 어필이지요.

늑대

이 영화의 주인공 '레드'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애니메이션 섹시 스타입니다. 베티 붑이 있지 않았냐고요? 하지만 레드는 자신의 섹스 어필을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위장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레드는 리타 헤이워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섹스 어필을 공공연하게 들이대며 당시 성인 남성 관객들을 자극했습니다.

당시 레드가 일으킨 센세이션은 놀라웠습니다. 많은 극장에서 관객들은 본 영화 대신 만화를 다시 틀라고 소란을 피웠고 레드가 출연한 다음 영화의 셀이 작업 도중 도난당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레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인기있던 핀업 스타들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버리가 섹스 어필만 생각없이 남발했다면 [레드 핫 라이딩 후드]가 이처럼 전설적인 작품이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 짧은 영화에는 머리가 핑핑 도는 창의력과 상상력, 에너지가 넘쳐 흐릅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레드에게 정신이 나간 늑대가 보이는 반응입니다. 휘파람을 불어대고 의자로 테이블을 때려대고 망치로 자기 머리를 후려치고 쟁반만해진 눈이 핑하고 튀어나오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효과적이어서 곧 수많은 작품들에 의해 모방되었습니다. 요새는 [레드 핫 라이딩 후드]라는 원래의 뿌리를 감지해내기 어려울 정도지요.

할머니의 펜트하우스

늑대와 할머니의 추적전도 걸작이라면 걸작입니다. 그건 논리와 이성을 완전히 무시한 추적전의 부조리함 때문이기도 하고 성적 공격자인 여성과 쫓기는 바람둥이라는 뒤바뀐 설정이 주는 도착적 쾌락 때문이기도 합니다.

[레드 핫 라이딩 후드]의 매력은 작품 전체에 넘쳐 흐르는 성적 에너지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관음주의자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우리를 미치게 하고 흥분하게 하고 아이큐를 떨어뜨리고 환상에 빠지게 하고 목숨을 끊게 하는 원초적이고 열광적인 에너지에 대한 영화적 예찬입니다. (03/06/19)

DJUNA

기타등등

네, 짐 캐리가 [마스크]에서 인용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물론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시카 래빗 역시 레드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