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월터 머치 Walter Murch

주연
페어루자 보크....도로시
Fairuza Balk.... Dorothy
니콜 윌리엄스....J.B. 월리/놈 왕
Nicol Williamson....Dr. J.B. Worley/Nome King
진 마시....윌슨 간호사/몸비
Jean Marsh....Nurse Wilson/Mombi
파이퍼 로리....엠 아줌마
Piper Laurie....Aunt Em
매트 클라크....헨리 아저씨
Matt Clark....Uncle Henry

1.

불멸의 걸작을 따르는 속편을 내놓는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원작이 아직도 한 나라 전체의 무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작품이라면 할 말 없죠.

[돌아온 오즈]는 당연한 값을 치렀습니다. 흥행에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비평적 성과도 별로였습니다. 감독인 월터 머치는 다시 편집일로 돌아갔고 영화는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돌아온 오즈]가 [오즈의 마법사]보다 잘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오즈의 마법사]가 풍기는 걸작의 향취가 없으니까요. 두 소설([The Marvelous Land of Oz] & [Ozma of Oz])을 끼워맞춘 스토리는 산만하고 원작에서 느껴지는 가슴 벅찬 요소도 없습니다.

월터 머치는 [오즈]에서 연상되는 밝고 미국적인 요소들을 싹 지워버리고 영화 전체를 음산한 악몽처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게 꺼려질 정도로 섬뜩하기도 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비난했던 것도 이 음산한 악몽같은 분위기였지요.

얼마나 정도에서 빗나갔는지 열거해보죠. 일단 도로시를 연기한 배우가 하고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페어루자 보크입니다. 보크는 물론 아름답고 재능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강한 인상은 밝고 명랑한 미국식 헤로인과 거리가 멉니다. 마녀 몸비가 말한 것처럼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배우죠.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보크의 묘한 이미지 때문에 이 영화의 도로시는 거의 롤리타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스토리도 음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로시는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전기 충격 요법을 받기 직전에 탈출합니다. 같이 탈출한 소녀는 도중에 익사하고 간신히 도착한 에머랄드 시티는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예전에는 여기에 노란 벽돌길이 있었는데...") 모험을 끝내고 세상을 복구한 뒤 도로시를 캔자스로 돌려 보내는 머치의 방식은 더 기가 찹니다. 에머랄드 시티 장면이 사라지자, 머치는 강변에 쓰러져 있는 도로시의 생기없는 파란 눈을 클로즈업하는데, 그게 [사이코]의 샤워 장면 마지막과 거의 똑같습니다! 과연 이게 아동용으로 만든 디즈니 영화가 맞습니까?

[오즈의 마법사]는 모든 게 도로시의 꿈이었다고 쳐도 밝고 행복한 영화입니다. 만약 [돌아온 오즈]에서 모든 게 도로시의 꿈이었다면 도로시는 미치광이이고 같이 탈출한 아이와 빌리나는 강에서 그냥 죽어버린 것이 됩니다. 액션도 폐허가 된 도시와 돌로 변해 머리가 잘려나간 사람들 사이에서 전개되고요. 도로시가 캔자스에서 돌아온 뒤 거울로 오즈마와 통신하는 장면도 [라비린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신나는 대신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마지막에 도로시가 토토랑 노는 장면도 묘하게 어둡군요.

2.

머치는 무능력한 감독이었을까요?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그랬습니다. [돌아온 오즈]는 기획면에서 완전 실패작입니다. 이런 영화가 80년대 중엽의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와서 보면, 이 영화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90년대의 관객들의 눈에 이 어두컴컴한 오즈의 비전은 30년대의 고전보다 훨씬 '쿨'해보입니다. 우린 이미 팀 버튼의 영화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머리 수집하는 마녀가 나오는 오즈라고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원래 진짜 동화들은 그렇게 음침한 구석이 있는 법입니다. [돌아온 오즈]의 음침함은 단점이 아니라 개성입니다.

본편보다 형이상학적인 가제트들이 많다는 것도 이 영화의 흥미진진한 점입니다. 바움의 원작에 더 가깝기도 하죠. [오즈] 시리즈의 진짜 매력은 정신없는 상상력의 발산에 있지,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체와 정신이 멋대로 분리되고 리얼리티와 환상이 뒤섞이며 다중의 진실이 존재하는 이 판타지는 [오즈의 마법사]보다 훨씬 머리 굴리기에도 좋습니다.

사용된 몇몇 특수효과들도 아직도 매력적입니다. 특히 놈 왕을 묘사할 때 사용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훌륭합니다. 헐리웃이 이 효과를 너무 빨리 쫓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3.

최근 들어 [돌아온 오즈]를 계속 되풀이 보게 되는데, 보면 볼수록 이 영화가 시대를 잘못 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도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영화가 되었으니 시대를 앞서는 것도 꽤 위험한 일이겠죠. 하긴 이렇게 잊혀졌다는 것은 이 영화에 팀 버튼 영화처럼 화끈한 독창성이 없었다는 말도 되겠지만요. (99/02/03)

D&P

기타등등

1. 세월은 흘러 페어루자 보크는 다 자란 성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발몽]이나 [가스, 풋, 로징]과 같은 영화의 틴에이저로 성인 신고식을 한 뒤로 [크래프트], [모로 박사의 DNA]와 같은 영화들의 약간 기괴한 배역들로 경력을 이어가고 있지요. 하긴 이 배우는 정말 무섭게 생겼으니 (흡혈귀 역을 한다면 분장도 필요없습니다) 당연한 길을 가고 있는 거겠지요.

2. 월터 머치는 여전히 편집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영국인 환자]로 아카데미 편집상을 받았고 [악의 손길]의 재편집을 담당하기도 했지요. 아무래도 그는 편집자 쪽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