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 * * 1/2

감독
샘 멘데스 Sam Mendes

주연
케이트 윈슬렛....에이프릴 윌러
Kate Winslet....April Wheeler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프랭크 윌러
Leonardo DiCaprio....Frank Wheeler
캐시 베이츠....헬렌 기빙스
Kathy Bates....Helen Givings
리처드 이스턴....하워드 기빙스
Richard Easton....Mr. Howard Givings
마이클 섀넌....존 기빙스
Michael Shannon....John Givings
캐슬린 한....밀리 캠벨
Kathryn Hahn....Milly Campbell
데이빗 하버....솁 캠벨
David Harbour....Shep Campbell
조이 카잔.....모린 그루브
Zoe Kazan....Maureen Grube
제이 O. 샌더스....바트 폴락
Jay O. Sanders....Bart Pollack
라이언 심킨스....제니퍼 윌러
Ryan Simpkins....Jennifer Wheeler
타이 심킨스....마이클 윌러
Ty Simpkins....Michael Wheeler




윌러 부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은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에이프릴 윌러가 실패한 배우라는 것입니다. 암만 봐도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요. 에이프릴은 천상 배우이고 스타입니다. 다른 식으로 존재하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아무리 연기가 형편없고 작품 선택에 실패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이 관객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마땅히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에서 스타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 50년대 미국 교외 주택가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치겠죠. 네, 미칠 겁니다.

그에 비하면 전 프랭크 윌러는 별로 안 불쌍합니다. 물론 그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유부남이 되어 아빠가 다니던 사무기기 회사에 주저앉아 월급쟁이 세일즈맨으로 살아왔으니 지겹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의 삶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솔직히 전 그가 자기 일을 그렇게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는 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실력이 있어요. 게다가 그의 일은 지루하거나 재미없지도 않습니다. 그가 다니는 회사의 목표가 뭔가요? 미국의 모든 기업에 컴퓨터를 보급하는 일이에요. 세계를 바꾸는 첨단에 서 있는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랭크가 불행한 건 에이프릴의 세뇌 탓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자아실현의 도구와 탈출구를 몽땅 박탈당한 50년대 가정주부가 자신의 불행을 남편에게 전이시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의지가 강하고 설득력이 뛰어난 건 에이프릴이고, 남의 암시에 쉽게 넘어가는 쪽은 프랭크입니다.

그나마 숨 쉴 여유를 제공해주던 동네 아마추어 극단이 실패로 끝나자 에이프릴은 새로운 계획을 짭니다. 온가족 모두 파리로 이사 가는 것이죠. 어떻게 먹고 살라고? 유럽에 있는 국제기구에서는 비서들에게 월급을 많이 준답니다. 에이프릴이 비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가족이 먹고 살고 남편은 남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못하고 있던 자아실현을 하면 된다는 거예요. 얼핏 보면 몽땅 남편을 위한 일처럼 보이죠? 아뇨, 이건 몽땅 에이프릴을 위한 계획이에요. 이 계획에서 실질적인 미래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비서 일(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업일까요?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경쟁자들이 많지 않을까요?)을 하게 될 에이프릴입니다. 정작 남편은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죠.

이 계획은 성사될까요? 아뇨.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이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아니겠죠. 여러분은 윌러 가족이 절대로 파리로 떠날 수 없으며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예쁜 집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 때문에 전 영화 중반까지 거의 식은땀을 흘리며 그 계획이 파탄 나는 순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전 이런 종류의 예고된 실망을 쉽게 견뎌낼 수 없어요. 체질인가 봅니다.

파탄 뒤에 남은 건 무엇일까요? 붕괴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붕괴되는 사람은 에이프릴일 수밖에 없어요. 직장도 있고 출세도 보장된 남편이야 앞으로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하며 잘 먹고 잘 살겠죠. 집에는 케이트 윈슬렛 닮은 아내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있고 그게 지겨우면 가끔 직장 후배랑 바람을 피울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에이프릴에겐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남은 건 전업주부의 감옥과 육체적 숙명뿐입니다. 그리고 에이프릴은 이 모든 것을 사라 베른하르트 뺨치는 극적인 방식으로 해치웁니다. 주변에 관객이 프랭크밖에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에요.

영화의 원작은 리처드 예이츠의 동명소설입니다. 1961년에 나왔더군요. 나름 동시대의 작품인 셈입니다. 번역되었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동시대를 그린 소설과 1950년대를 미국 중산층 가족의 공허함의 상징으로 그리는 샘 멘데스의 2008년 영화의 접근법은 어느 정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꽤 일찍 판권이 팔린 모양이던데, 만약 6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요.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60년대식 연기와 거리가 있으니까요. 제 생각엔 연기만 따진다면 지금이 영화화하기 좋은 시기였다고 봅니다. 60년대식 양식화된 연기보다는 속살이 드러나는 사실적인 연기가 더 먹히는 영화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배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최대한으로 살려주는 작품이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잘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캐릭터의 힘이 조금 떨어지죠. 그리고 아직 전 이 배우가 그렇게 어른처럼 보이지가 않는답니다. 늘어진 피부를 보면 서른이라는 캐릭터의 나이보다 더 삭아 보이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프랭크의 역할에 더 잘 맞아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 (09/02/10)

DJUNA

기타등등

[타이타닉]의 유령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영화입니다. 케이트 윈슬렛,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캐시 베이츠의 캐스팅부터가 그렇죠. 심지어 손으로 유리를 치는 카섹스신도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