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그렉 박 Greg Pak

주연
탐린 토미타....마샤
Tamlyn Tomita....Marcia
제임스 사이토....로이
James Saito....Roy
와이 칭 호....버니스
Wai Ching Ho....Bernice
신디 청....그레이스
Cindy Cheung....Grace
존 카리아니....세일즈맨
John Cariani....Salesman
그렉 박....아치
Greg Pak....Archie
줄리안 한젤카 킴....리디아
Julienne Hanzelka Kim....Lydia
빌 콜리어스....밥
Bill Coelius....Bob
샙 시모노....존 리
Sab Shimono....John Lee
에이사 데이비스....헬렌
Eisa Davis....Helen
팀 강....젊은 존
Tim Kang....Young John
론 도밍고....토미
Ron Domingo....Tommy

(스포일러가 있어요.)

마샤와 로이

그렉 박의 [로봇 이야기]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네 편의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디지털로 찍은 저예산 영화이니 엄청난 특수 효과는 없죠. 할리우드 주류 SF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총질이 난무하는 액션 영화도 아니고요. 이 영화의 장르는 오히려 멜로드라마 쪽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동양인들이 잔뜩 나오는 멜로드라마지요. 감독인 그렉 박이 한국계 혼혈이기 때문이겠지만요.

'My Robot Baby'는 입양 심사를 위해 달걀 모양의 로봇 아기를 입양한 부부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새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 하던 이들은 곧 직업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특히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아내 마샤는요.

'The Robot Fixer'는 뇌사한 아들의 집에서 부서진 로봇 장난감들을 발견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의 생명유지장치를 끊어야 하는 시점에서 이 어머니는 아들의 로봇 장난감들을 수리해야한다는 집착에 빠지죠.

'Machine Love'는 사무용으로 개발된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입니다. 아치라는 이 로봇은 인간과의 상호작용 기능도 품고 있지만 인간 동료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를 효율적인 기계 취급만 하죠. 그러던 그는 옆 건물에서 일하는 같은 기종의 로봇과 사랑에 빠집니다.

'Clay'는 인간의 정신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조각가인 존은 이미 죽어 디지털화된 아내와 재회할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네 로봇들은 모두 성격과 종류가 다릅니다. 'My Robot Baby'는 실제 아기 크기의 다마고치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단순한 기계입니다. 'The Robot Fixer'에 나오는 로봇들은 진짜 로봇이 아니라 로봇 장난감이고요. 'Machine Love'의 아치는 거의 인간과 외모가 유사한 안드로이드이고, 'Clay'의 헬렌은 죽은 아내의 정신을 물려받고 가상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공 지능입니다. 당연히 로봇들의 종류에 따라 하려는 이야기도 다르지요. 하지만 영화 전체를 흐르는 공통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세계의 의사소통이지요. 그것은 인간과 기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인간과 인간과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My Robot Baby'에서 로봇은 주체라기보다는 촉매입니다. 인간과 아주 간단한 상호작용만 하는 이 로봇은 주인공 마샤의 간단한 상호작용 속에서 어린 시절의 미샤와 아주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그녀의 과거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로봇인 '바비'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 행동하는 존재와 상호작용을 하는 인간의 마음이지요.

괜찮은 아이디어이고 후반부 역시 효율적인 멜로드라마의 역할을 합니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로봇인 '바비'의 기능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후반부의 결말에 어울리는 감정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저예산 영화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두번째 문제는... 글쎄요. 전 이 에피소드의 커리어 우먼 묘사가 지나치게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고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제의 심각함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The Robot Fixer'에서 로봇 장난감들은 일종의 영매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인 버니스가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대상은 로봇이 아니라 뇌사 상태에 빠져 있는 아들입니다. 부서진 로봇들을 고치는 과정은 죽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의식이기도 하지만 생전에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 아들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이기도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로봇 이야기]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건 이 작품이 SF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른 세 작품과는 달리 'The Robot Fixer'에는 장르 클리셰나 스테레오타입의 흔적이 거의 없고 이야기의 흐름은 독창적입니다.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세대차라는 현실적인 주제도 에피소드에 무게를 더해주고요.

'Machine Love'의 아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수상쩍은 존재입니다. 암만 봐도 아치를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는 일이라곤 컴퓨터 앞에서 타이프를 치는 일밖에 없는데 감정과 성적 욕구까지 심어놓으면 어쩌라고요?

물론 관객들은 대충 이 이상한 설정을 장르 관습으로 받아들이며 무시하게 됩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차별대우를 받고 도구 취급을 받는 지성체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려는 과정이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조금 더 미래로 옮겨놓고 아치의 설정에 당위성을 부여했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이 에피소드는 그냥 가볍다는 느낌만 드네요.

'Clay'의 헬렌은 로봇이 아닙니다. 우린 이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이 존재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죠. 헬렌은 존의 죽은 아내 헬렌의 기억을 모두 갖추고 있고 헬렌답게 상호작용을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전환된 뒤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그 불완전함을 잃었습니다. 존이 인공적인 영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죽음 역시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계 속에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진지하고 종종 감동적이기까지 한 에피소드입니다만, 새롭다고는 못하겠군요. 결말 역시 예측 가능하고요. 낡은 소재를 다룰 땐 사색의 깊이를 조금 더 파면 좋을텐데 말이죠.

[로봇 이야기]는 로봇이라는 기계를 다루고 있지만 생각 외로 따뜻한 영화입니다. 이건 감독의 감수성 때문일 수도 있고 거대 자본을 들인 주류 할리우드 SF 영화와 차별화하려는 시도 때문일 수도 있어요. 두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진지하고 솔직해서 감흥이 약한 편은 아닙니다. 주제를 고려해보면 SF적인 접근법이 좀 약해서 실망스럽긴 합니다만 늘 그런 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겠지요. 전체적으로 괜찮은 단편집이었어요. (03/07/21)

DJUNA

기타등등

감독인 그렉 박은 3편에서 로봇 주인공 아치를 직접 연기했습니다.